김영미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42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22회] 의림지에서

- 한 시대가 가고 또 와도 저수지는 영원하다 의림지에서/ 김영미 패랭이꽃 가파른 의림지에 오르니낮은 곳을 헤매던 바람이자줏빛 휴식에 들어 물은 고요하다 아예 구름에게 돌아가고요의 의궤儀軌를 쓰는지미동도 없다 물을 쌓는다는 것은구름에 대한 책무일까한 나라의 성덕일까 가난의 슬픔을 승화시키려역사 속에 숨어서 비를 맞거나우륵이 쌓고 정인지가 보수했다는 견고한 둑길을 걷는다 바람이 흔들고 간저수지 갑문을 들여다보며 솔빛 젖은 의림지에서백성을 살피던 마음을 읽는다 물 고인 자리에 구름 들고구름 지나는 자리저수지 물빛이 내 그림자를 품는다하늘은 가슴 열어 누리를 적시고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이다.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 등에 기록된 수리시설로 역사적 가..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21회] 감나무 아래서

- 유월의 평화 속에서 추억의 유년을 당기며 유월을 논하려면 또 다른 길로 남겨진 6.25가 있어서 영토는 비좁다.먼 옛날의 허기를 달래며 소통하지 못하는 그 벽에 가로막힌 상생의 길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열 수 있을까?생각과 회상의 본질을 여닫는 사이에도 꽃들의 장르는 소리 없이 바뀌고 평화로운데....다시 온 유월에도 습기 찬 호흡에 발소리를 줄이며 화합하지 못하는 사상과 이권 사이를 비집고 분쟁 역사의 내시경 속 뒷짐 진 사연의 속내를 살핀다.역사는 과거들만의 미로다. 망초꽃의 하얀 환영에 실려 유년으로 달려가는 내 안의 멀미들, 그 속에서 고요를 뭉쳐 환영을 부풀리면 보리 이랑을 뒤로 어머니가 건네던 빨간 산딸기가 있다.오늘도 추억의 궤도 밖에서  열매를 맺는 유월의 감나무 아래 유년의 기억을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20회] 추억에 젖은 밤

- 아픔도 향기로 건네는 마법사, 추억 세상의 모든 사연 속에는 태양이 떠나보낸 심부름의 의미처럼우리를 태연하게 옛 추억으로 승화시켜 주곤 합니다.그래서 추억은 때로 눈물의 미로에서 마주치기도 하고애잔한 그리움과 무중력의 향수, 방황이 동행하는 업보 같기도 합니다.오늘의 냄비에는 추억과 방황을 꾹꾹 눌러 넣고 불을 지펴봅니다.관성 밖에서 떠돌던 이별은 눈물의 곡절을 뒤적이다가 마침내 향긋한 기억을 뭉글뭉글 피워냅니다.자신보다 더 먼저 와 있는 귀소본능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일지도 모르는데,방황은 망각의 퇴적물이 된 여행의 끝에서 늘 서성입니다.  추억에 젖은 밤/ 김영미 낡은 방파제가 보이는 창가에서지난 여행이 회상에 접힌다 밤의 공터로 마실 나온 별들이그대 눈망울에서 빛나던 날한낮의 열기를 식히던 맹..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19회] 선인장

선인장/ 김영미 푸른 잎이 가시가 되기까지모래와 바람의 써레질태양의 화살을 얼마나 받아야 했을까길게 빠져나온 가시에사막이 가득 차 있을 거다낙타의 여정을 달구며태양 속으로 뻗어가는 가시의 힘사막의 길이 된다 뿌리 깊은 푸른 꿈물관을 가로질러 이곳에 닿았음일까사막을 건너온 어머니 얼굴에저승꽃 피었다선인장 가시처럼 야윈 주름은자식들이 휘두른 상실의 상처일까낙타의 발굽처럼 단단한고난의 세월에 바랜 가슴소금 사리로 응어리졌을 거다그 힘으로 자식들은 길을 잃지 않고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는다. [시작메모]- 질곡의 세월을 살아오신 모든 어르신들께 ‘노인이 삶을 등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거다’라고 하지요. 격동의 세월을 겪으며 터득한 삶의 지혜와 연륜의 결과를 높이 평가한 말이겠지요.부모님들의 삶을 생각하면 눈물..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18회] 구름의 서사시

- 장마는 구름이 쓰는 거대한 서사시▲ (삽화=박소향)[골프타임즈=김영미 시인] 세계는 지금 각종 전쟁의 소용돌이로 뜨겁다.이념과 종교, 이권의 엇박자로 인한 국지전과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 가스로 인한 기후변화, 각양각색의 난재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분단국가인 우리는 특히 유월이 오면 숙연한 마음으로 호국 영령들을 생각한다.지상에서는 부주의한 창들을 잠그고,새들은 작은 칩거 속에 또 모습을 감추고 무능한 부리를 기억 속에 묻고 있는 유월.우리는 서로의 이념만이 옳다고 논쟁하다가 조국의 운명을 암울하게 했다.아직도 분쟁의 불씨는 상생의 혈맥을 짓누르고 있는, 가슴 아픈 유월이다.  구름의 서사시/ 김영미 유월은 새들조차 귀를 닫는다골방에서 쓰다만 편지지에뒤늦은 비의 추신을 적고 있거나곰팡이 사..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19회] 선인장

선인장                 김영미 푸른 잎이 가시가 되기까지모래와 바람의 써레질태양의 화살을 얼마나 받아야 했을까길게 빠져나온 가시에사막이 가득 차 있을 거다낙타의 여정을 달구며태양 속으로 뻗어가는 가시의 힘사막의 길이 된다 뿌리 깊은 푸른 꿈물관을 가로질러 이곳에 닿았음일까사막을 건너온 어머니 얼굴에저승꽃 피었다선인장 가시처럼 야윈 주름은자식들이 휘두른 상실의 상처일까낙타의 발굽처럼 단단한고난의 세월에 바랜 가슴소금 사리로 응어리졌을 거다그 힘으로 자식들은 길을 잃지 않고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는다.  [시작메모]-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어르신들,  ‘노인이 삶을 등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거다’라고 하지요. 격동의 세월을 겪으며 터득한 삶의 지혜와 연륜의 결과를 높이 평가한 말이겠지요.부모님들..

김영미시[참 시詩 방앗간17회] 노숙자

- 가슴 따뜻한 누군가가 그리웠을 수많은 밤 노숙자/ 김영미 빛들의 사각지대희망이 엿볼 수 없는 곳에사내 하나 멈춰 있다아침 출근길 혹은 저녁의 분주한 약속들의 저지대를 몇 모금의 알콜 몇 줌 절망을 덮고서긴 수면 속을 뒤척인다 도시의 모퉁이에서 주워 온 절망이 덜 탄 담배꽁초를 만지작거리며낮과 밤이 중단 된 후 미진 안쪽을 성지처럼 지킨다 그의 출처도 처음부터 지하의 주소는 아닐 것이다크고 작은 주말이 종교였으며달력의 날짜들은 오래가지 않아추억으로 바뀌던 시절해바라기가 없었다면 공중의 햇살들은어디로 몰려가서 실낙원을 쓰고 있을까햇살은 또다시 원죄를 덮고서해바라기에게 돌아올 것이다저 사내도 분명 서풍이 불었거나아내의 생일이 잘 보이는달력의 날짜 속으로 출퇴근 했을 것이고지금 도시는 미지수다 [시작메모]-..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16회] 아까시꽃의 전언

아까시꽃의 전언/ 김영미 아까시꽃이 피었다돌아간 바람 다시 일어나고하얀 추억이 피어난다 아까시나무 꽃 피워낸 건뱁새 둥지에 뻐꾸기 알 깨었다는 소식뻐꾸기 울음에 동구 밖이 시끄럽다 오래전 마술사를 따라갔던아이들의 귀향이 피어난다귀소본능이 멈추고진땀을 흘리는 지구의 온난화선풍기가 바람을 두리번거린다 겸연쩍은 오월은창을 열어아까시향을 슬며시 건네고뱁새의 설움 녹음이 감춘다 [시작메모]지금까지 ‘아카시아’로 알고 있는 ‘아까시나무’는 콩과의 낙엽교목이고,아카시아는 열대와 온대 지역에 분포하는 상록수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이제부터는 아카시아꽃이 아닌 ‘아까시꽃’으로 불러야겠다.가끔은 마스크 쓴 가짜에 익숙해져서 진실이 왜곡된 삶을 살기도 한다.하지만 더 많은 꽃향기를 숨기기 위해서는 견고한 밤이 더 필요했을지도..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15회] 흰밥도 눈물을 흘린다

- 아랫목에서 덥혀지던 아버지의 밥흰밥도 눈물을 흘린다아버지의 온기가구들장 내력을 묶어놓은 오전누군가 시루 속 콩나물을 깨워 놓고 간참 이상도 하지문종이를 통과한 햇살의 잔영에도제 음표의 고개를 드는그 빛나는 여백 속에서내가 꿈꾼 것들은어떤 허기의 아랫목을 기억하는 걸까열려라 흰밥그 순간아버지의 부피를 젖히고담요 속에서 들췄던 건작은 세례명참 이상도 하지밥을 열자 뚜껑 안쪽에 숨겨진 눈물검은 오지의 깡마른 아이 눈망울에서꼿꼿하던 아버지의 고개 숙인 음표들이디지털 밥솥의 경적을 울리며내 안으로 들어선 후에야눈부신 아버지 눈물이 보이는 것은.  [시작메모]아버지는 우리들의 밥이었다.추수가 끝난 겨울이면 농부들에겐 휴식기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일찍 일어나 군불을 지피셨다.새벽밥 짓는 어머니와 늦잠 자는 자식들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14회] 푸른 곡선

- 자전거와 덤프트럭의 두려운 추억 ▲ (삽화=박소향)[골프타임즈=김영미 시인] 아버지의 자전거는 어린 나에게 극복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발끝이 겨우 페달에 닿을 나이쯤에, 친구들과의 놀이나 나무 그늘의 풍경도 반납하고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자전거를 끌고 조심스레 골목길을 달리며 연습하다가가 약간의 자신감이 생기자 신작로로 향했다.그 시절의 신작로는 거의 비포장 길이었다. 차들도 가끔씩 지나가곤 했는데,  어느 날 맞은편에서 덤프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순간 중심을 잃은 나는 도로 옆 풀밭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자전거 바퀴는 하늘을 향해 돌고 넘어진 나는 다행히 약간의 찰과상만을 입었다.그 덤프트럭은 한동안 꿈속에서 나를 향해 달려오곤 했다. 두려운 추억과 골목길에서의 일련의 사건들을  용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