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궤양 / 김영미
상상은 종종 구토증을 앓는다
서사의 앞뒤가 맞지 않아
고뇌의 서재에서 밤을 새우며
은유라는 화석 앞에 이르러서는
연대를 알 수 없는 감성에 빠지기도 한다
꽃이 계절을 넘는 방식과
씨앗 하나로 겨울에 은신하는 법
어느 봄날 산역(山役)을 마친 후
홀로 남은 뻐꾸기 울음소리와
무시로 가을의 가장자리에 피었다 지던 소국은
어느 천사가 쓰다가 만 비망록일까
이럴 때 나는 외치고 싶다
허약한 육체에는
산소와 영양을 보충하면 된다지만
소화불량을 앓는 원고지 앞에서는
어떤 처방전을 받아야 할까
수많은 날의 밤을 별과 지새우며
울창한 숲을 완성한 원로작가의 잉크병에는
얼마나 많은 문장이 강을 이루고 있을까
염증으로 신열 오른 내 문장들은
삐뚤삐뚤 비틀대는 곡예로 서툴지만
나무가 삭풍과 폭설을 견디고 꽃 피우듯
별을 향한 푸른 펜을 놓을 수 없어
시를 향한 삶의 모서리가 아프다
[作詩메모]
시인의 길은 샹송과 같아 부드러운 요철을 넘어온 듯 오리무중인 밤안개 같다. 어둠 속으로 더 깊이 은신하는 법과 이미 침묵 중인 충고 속으로 더 가까이 닿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선지 밤안개 속에는 짙은 외투의 계절과 태양을 정오 저 너머로 밀어내는, 누군가의 독백이 있는 듯하여 그 화두를 찾기 위해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늘 삶의 깊은 동공 속을 서성이면서도 정작 스스로에겐 보이지 않는 오랜 불청객이 시였음을 느끼며, 펜을 놓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답을 적는다.
시를 향한 그 신열과 적응의 어디쯤에는 우리네 삶의 애환과 서정의 역사도 켜켜이 쌓여 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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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55회] 시인의 궤양
시인의 궤양상상은 종종 구토증을 앓는다서사의 앞뒤가 맞지 않아고뇌의 서재에서 밤을 새우며은유라는 화석 앞에 이르러서는 연대를 알 수 없는 감성에 빠지기도 한다꽃이 계절을 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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