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배신자/ 김영미
생태공원이 된 호암지를 거닐다
오리배를 타던 젊은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쿵쿵 뛴다
호수는 잘못 들른 구름이
몇 줄의 편지를 쓰다가 남긴 추신
‘나를 잊지 말아요’
호수가 거울이 되지 못하는 건
추억을 버리지 못한 구름 때문이라고
내가 가난해서 보내야만 했던
평행선처럼 닿지 못한 그 사랑은
멀지 않은 곳에서 물가를 찾아
추억이 된 풍경을 튕긴다
안개는 그 사내의 기타 선율처럼
물가에 독백으로 서리고
바람에 흩어지는 물결의 페이지를 넘기며
붉어진 눈망울로 지난날을 펼친다
노을을 등진 산 너머
오두막이 있을 것 같은 그곳에서도
나를 잊지 말아요
붉은 가슴 하나 호수를 물들인다
[作詩메모]
첫 새벽을 깨워 올라탄 기차가 여행의 첫 출발이라 생각할 때가 있었지요.
충주여고 맞은편에 있는 호암지가 지금은 생태공원이 되었지만,
예전엔 오리배를 타고 구름처럼 유랑하던 연인들의 성지였습니다.
흑백의 계절을 빠져나온 풍경들에게 틈을 열어줬다 닫았다 하는 원근법을 펼쳐보는 추억은
기억만으로도 오늘을 향기롭게 합니다.
풋풋한 청춘이던 시절을 향해 추억의 낚싯대를 드리우고 기억의 태엽을 팽팽하게 조여 봅니다.
추억은 풀밭의 곤충들처럼 한 번의 점프로도 또 다른 여름으로 이동합니다.
다시 과거로 가는 페이지가 있다면 그 속을 정독하고 싶은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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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54회] 추억의 배신자
추억의 배신자생태공원이 된 호암지를 거닐다오리배를 타던 젊은 시절이 떠올라가슴이 쿵쿵 뛴다호수는 잘못 들른 구름이몇 줄의 편지를 쓰다가 남긴 추신‘나를 잊지 말아요’호수가 거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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