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32회] 그늘의 시간을 보다

언어의 조각사 2024. 10. 2. 17:23

그늘의 시간을 보다 / 김영미

 

칠사산 속을 산책하다가
문득 눈에 띈 버섯무리
현란함으로 보아 독버섯임에 분명하다
노란빛 혹은 형형 색채 속에서
독성의 날들을 보낸다는 것
썩거나 죽은 나무의 그늘을 섭취하며
햇살의 반대편을 느린 생애로 버텼으리라

 

내 안의 사랑도 그랬을 것이다
넝쿨처럼 뻗어와 칭칭이 마음을 흔들어
백지와 먹물이 뒤섞인 젊음의 뒤안길에서
나의 사랑도
이지러진 상처들을 보호하기 위해
독성의 은신처를 빌려야 했으리라

 

사랑은 독이다
아니, 내 안의 느린 시간을 보호하기 위한
썩은 양분들이다
습기 찬 계절 속을 서성인다는 건
얼마나 찬란한 발효의 독성이던가


나는 그늘들의 시간을 지우고서
밤의 입구
이슬들이 몰려오는 또 다른 감촉들에게
귀를 적시기 시작한다

 

[시작메모]

- 여름 속의 가을을 지나며 -


우리네 삶도 숲의 나무처럼 넝쿨을 만날 수 있다.
한여름의 불화를 헤집고 낯선 숲에 도착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가을은 여름이 보낸 것들이 지탱하는 붉은 단서들로 향기롭다.

가끔 오르는 산의 향기는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비 내린 후의 산속은 고혹적이라 나를 매료시키곤 하기에....

 

부드럽게 펼쳐놓은 이끼들의 향연과 간간이 만나는 버섯들은,

동화책에서 뛰어나온 요정들처럼 흥미롭다.
식용버섯과 독버섯을 구분한다는 건 지난 시절 사랑의 감성을 불러 보듯,

무미한 감정의 즐거운 스케치가 되기도 한다.

 

그늘과 습기 찬 터전에 현란한 포자를 증식시키는 버섯들의 내밀한 생존은,

현실의 조건들은 무시하고 오롯한 사랑의 믿음만으로 결혼을 결심했던

순수했던 젊은 날 파노라마처럼 아름답다.

 

쉽사리 줄어들 것 같지 않은 숲속 이야기처럼,

여름의 뜨거운 열정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가을이다.

결실의 절기에 다다른 나이 임에도 미처 여물지 못한 미련...

하지만 겨울을 바라보는 가슴에 사랑의 난로 하나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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