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33회] 식물의 매니큐어

언어의 조각사 2024. 10. 2. 17:13

식물의 매니큐어 / 김영미

 

밤새 내린 비로
오전의 호흡이 소란스럽다

 

손톱에 말라붙은 매니큐어가
햇살에 반사 되어 풀꽃을 찡그리게 하던
아직은 즐겁거나 편하지도 않은 한 때

 

지난 며칠 우기와 주고받았던
몇 장의 엽서라도 읽어보듯  
햇살로 코팅된 식물들의 매니큐어에서
흐린 문자들이 미끄러진다

숲을 헤치고 들어서니
잠을 설친 들꽃들이 화들짝 몸을 연다

 

헤아릴 수 없는 가파름 속에서
꽃잎이 무시로 가벼워지는
그 무중력은
간밤에 놓친 내 꿈의 잔영일까

 

겉치레를 벼리던 불면의 날들은
여물지 못한 속내를 감추려는 듯  
빛 잃은 영혼에 매니큐어를 덧칠하는
존재의 표류일까

 

식물들의 민낯이 빛나고      
숲이 등줄기를 곧게 펴는
늦은 오후에도
숲은 산란의 호흡이 거칠다

 

[시작메모]

- 비움으로 아름다운 계절의 주인공


가을 햇살을 퉁기며 반짝이는 나뭇잎들이 매니큐어로 치장한 내 손톱보다 아름답다.

끝을 보이지 않을 것 같던 한여름 무더위도 지친 듯 청량한 바람소리에 밀려가고,

꽃들이 망명한 열매를 익히느라 나무들의 사생활이 분주하다.

 

건너편 숲 저쪽에는 뚝 떨어진 매미소리로 가득 할 것인데,

숲은 은화처럼 작은 태양을 공중에 띄워 놓고

나무와 나무 사이 낮은 촉수의 풀벌레 소리로 가을 서정의 악보를 펼친다.

 

풍경들에게 계절의 틈을 열어줬다 닫았다 하는 원근법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우리들의 고단한 심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다가 결론을 내릴 수 없어,

더 낮은 곳으로 잠입하는 나뭇잎의 숭엄한 수런거림을 듣는다.

 

가을에는 제 무게를 내려놓는 나무처럼,

비움의 미학으로 내실을 다지는 아름다운 계절의 주인공이고 싶다.

 

▼ 골프타임즈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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