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와 추석 사이/ 김영미
처서가 양철지붕 식히느라
움츠러드는 소리에
한여름 뙤약볕이 주춤 거린다
마루를 뛰노는 먼지들과 공기놀이 하던 햇살
오래전 여닫다 접어 둔 습기 찬 들문
구름이 머물다간 얼룩을 지운다
송편 빛깔 달이 부풀자
집 나간 송아지 개울 건너
늙은 태양을 등지고 오는 계절
가난한 자식들도 납빛으로 돌아온다
지붕 위 고양이는
또 다른 계절로 건너가기 위해
보름달을 물고 온다
아직은 모기주둥이 뻗뻗한
여름 끝자락
버드나무 실가지가 꼿꼿하다
삶의 칼바람에 휘둘릴 때면
서덜 밭 일궈 놓은 부모님 생각
오가는 사연은 다양해도
탯줄 당기는 고향 품으로
둥글게 하나 되어 닻을 내린다
[시작메모]
- 어머니가 준비하시던 추석 명절 준비
추석이 가까워 지면 농촌에 있는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위한 준비로 더욱 분주하다.
음식 준비와 더불어 더위에 지친 헛간의 농기구들도 바빠진다.
어머니도 늘 추석 무렵이면 대청마루 위 시렁에 얹어놓았던 창호지를 꺼내 문에 바르고는
문고리 주변을 마른 꽃잎과 나뭇잎을 넣어 덧바르곤 했다.
햇살을 통해 드러나는 견고한 미적 여유로움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고향 집에는 뒤란으로 향한 들창문이 있었는데,
나는 그 창을 통해 소꿉놀잇감을 은밀히 감추거나 익어가는 감과 밤나무 열매를 탐색하곤 했다.
그곳을 드나들던 구름의 계보에는 굴뚝이 남긴 그을음과 함께 상상력을 키워주었다.
바람과 햇살이 빚은 고풍스러운 풍경들은 어린 시절을 수묵화처럼 반추한다.
며칠 후면 추석이다.
남편은 청소기를 돌리며 대청소를 할 것이고 이불 빨래는 세탁기가 해 줄 것이다.
나는 전기밥솥과 오븐의 도움을 받으며 약간의 음식을 준비해 놓으면,
선물처럼 달려온 아들과 딸을 통해 온 가족은 귀여운 손주의 재롱을 즐기다가
모자란 음식은 배달앱을 통하면 식탁은 푸짐하게 차려질 것이다.
풍요로운 세상의 주부가 되어 부모님의 삶을 떠올려 보니,
곤궁한 삶을 살면서도 늘 온유한 사랑으로 기억하게 해주셨다.
존경의 마음보다 앞서는 애잔함에 울컥 명치끝이 아려 온다.
고단한 삶을 지우며 당신을 담금질하듯 후련하게 달래셨을 어머니의 대청소,
하현달이 고향을 통과하면 내 가슴도 만월이 될 수 있을까.
▼ 골프타임즈 가는 길
http://m.thegolf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337
'김영미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33회] 식물의 매니큐어 (2) | 2024.10.02 |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31회] 도산서원에 와서 (3) | 2024.09.19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29회] 잠 속을 걷다 (0) | 2024.08.31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28회] 여름 바이러스 (0) | 2024.08.26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27회] 별들의 유배지 (0) | 2024.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