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27회] 별들의 유배지

언어의 조각사 2024. 8. 17. 08:50

 

별들의 유배지/ 김영미

 

매미소리는 한여름의 간이역이다
살아있는 자는 누구나 울음을 되새김질 한다

 

골목을 잘못 들른 더운 열기가
담장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오후
가파른 계단 위 옥상에 오르니
후미진 공간엔 별들의 숙소가 있다

 

그곳에서 밤하늘을 열면
일시에 몰려들던 눅눅한 공기가
숨 가쁘게 넘어 온
한낮의 현기증을 두드린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원근법도 없이 옥탑 방에 든다
몇 모금의 소주잔 속에서
잊고픈 깊이로 갈앉으려 해도
뙤약볕 잔상들만 저문 방에 가득하다

 

누군가가 회색 벽에 갈겨 쓴
태양은 죽었다’란 낙서와
긴 동거를 하는 동안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었다

 

서쪽으로 몰려가는 쓸쓸한 매미소리
거리 저쪽의 나무는
잎들의 퇴로를 위로하듯
노을을 걸치기 시작한다

 

나는 창을 열어
후끈 달아오른 열기를 내보내며
별들을 끌어안는다

 

[시작 메모]
땅속에서 7년에서 13년을 살다가 지상에서 일주일을 산다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서민들의 아픈 사연을 듣는 듯 따갑게 가슴에 닿는 한여름이다.

신은 인간에게 시련을 주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도 부여했다고 하니,

힘든 일이 있더라도 가슴에 별을 품고 희망의 빛을 밝혀가야 한다.

 

무더위를 떨치기 위한 몇 개의 가능성 제품들이 물거품 되자

섬이나 숲으로 들어갔던 여름 피서들이 몇 줌 매미소리와 함께 몰려나온다.

그 울음소리가 한 때 동경의 대상이었던 옥탑방이었고,

열대야를 겪고 나서야 신비롭게만 보던 감성적 선망이었음이 부끄러워졌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나무가 흔들리며 온갖 뉴스가 젖어 들고 있다.

가을엔 너른 햇살로 마당 한가득 희망을 펼쳐 말릴 수 있도록,

하루빨리 시원하고 잘 영근 소식들로 향기롭기를 바란다

 

골프타임즈 가는 길 

골프타임즈 모바일 사이트,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27회] 별들의 유배지 (thegolftimes.co.kr)

 

삽화:박소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