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노숙자

언어의 조각사 2022. 7. 20. 20:47

노숙자

                      김영미

 

빛들의 사각지대

희망이 엿볼 수 없는 곳에

사내 하나 멈춰있다

아침 출근길 혹은

저녁의 분주한 약속들의 저지대를

몇 모금의 알콜

몇 줌의 절망을 덮고서

긴 수면 속을 뒤척인다

도시의 모퉁이에서 주워온

절망이 덜 탄 담배꽁초를 만지작거리며

낮과 밤이 중단된

후미진 안쪽을 성지처럼 지킨다

그의 출처도

처음부터 지하의 주소는 아닐 것이다

크고 작은 주말이 종교였으며

달력의 날짜들은 오래가지 않아

추억으로 바뀌던 시절,

해바라기가 없었다면 공중의 햇살들은

어디로 몰려가서 실낙원을 쓰고 있을까

햇살은 또다시 원죄를 덮고서

해바라기에게 돌아올 것이다

저 사내도 분명 서풍이 불었거나

아내의 생일이 잘 보이는

달력의 날자 속으로 출퇴근했을 것이고,

지금 도시는 미지수다

 

2022.07.19

 

시작메모-------------------

어쩌면 그 사내와 우리는
아이들의 눈망울 생각하며
그 까만 점성의 날들을 가슴에 품은 태양의 밀실에서

지금쯤은 노란 희망을 피워올리고 있을까?

꼭 그러하기를,

 

모던포엠2023년 6월-이달의작가

2024년 한국창작문학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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