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보시
김영미
소화되지 못한 멧짐승의 오늘이
머루랑 도토리를 낳고 숲을 낳는다
숲을 빠져나온 허기가 파헤친
속을 드러낸 밭은 말이 없다
씨앗 세 개를 심는 것은
새와 벌레들과 나누는 삶이라
산기슭 세 두렁은 그네들 몫이라는
농부 가슴에 하늘이 들어있다
도토리가 영글고
녹두꽃이 진다
낙화는 또 하나의 생을 여는 숭엄한 추락이다
열매를 향한 침묵의 길을 놓는
사랑으로의 아릿한 번짐이다
공중에 태양 하나 켜 놓고
푸른 멍울 태우는 숲이 지게에 얹힌다
농부의 등이 숲을 접는다.
17.10.07
오늘도 산짐승들이 숲을 옮기는 중일 거다.
사람들의 욕심이 저들의 터전을 훼손했기에 요즘 농촌은 하산하는 짐승들과의 전쟁으로 삭막하기도 하다.
자연환경을 파괴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산 밑 세 두렁은 저들의 몫이다.” 라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농부의 마음은 들녘처럼 넉넉하고 푸근하다.
그림:삶의언저리님 블로그
착각의 시학.18년사화집
시마을 21.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