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문학의 향기(공부방)

구름의 노래/ 박경원

언어의 조각사 2017. 8. 15. 15:50

❏❏좋은 시를 쓰려면 참고하세요..~~^^

 

구름의 노래 1/박경원

 

아버지의 비가 내리면

어머니는 마른 땅 위를 걷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맨발이었고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늘진 그 길 위에서

어머니의 말은 자꾸만 발을 헛딛곤 했으므로

강을 건너거나 풀밭을 만나도

어머니의 말 들리지 않았고

누군가 부주의하게 둘러놓은 목책만이

푸른 이끼로 빛나는 날

그날도 어머니는 세상의 벼랑 끝까지 다녀오고서야

마른 맨발을 우물에 씻어냈고

아버지의 비는 내 꿈 속에서만

더 무더운 진땀으로 쏟아지곤 하던,

아!지금은 갈 수 없는 그 시절 어머니의 땅

커튼을 열고서 가까이 다가온 구름들에게

하얀 수화 몇모금 띄워 보낸다

 

구름의 노래 12/ 박경원

 

가뭄이 밀려들면 아버지는 풀밭을 걸어

벼랑 끝으로 갔다

계곡 아래로 긴 팔을 뻗어

7월의 장마를 길어 올렸다

가뭄이 밀려들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가로질러

내 유년의 새벽꿈 속까지 걸어갔다

계곡 아래로 긴 팔을 뻗어

7월의 장마를 길어 오셨다

양동이 가득 쏟아내던 아버지의 근엄함

그날 오후에도

나는 아버지를 피해 새벽의 꿈들을 덜 익은 까마

중 속에 숨겨 놓았다

 

구름의 노래 14

 

비가 왔다

며칠 동안의 소녀가 개울물에 갇혔고

나의 공상이 산책을 할 때마다

풀들은 잉크를 찍어 감청색 사연들을

그 위에 적었다

비가 왔다

며칠 동안의 소녀가 답장도 없이

그 개울물 속을 떠돌았고

새로운 구름이 그 속으로 나타난 건

내 감청색의 잉크가 다 마른 후였다

 

구름의 노래 15

 

보라 내가 면소재지를 지나 아무런 용기도 없이

그 소녀에게 가던 그날을,

등나무는 오월의 갈등들을 협동조합 뒷마당에 칭

칭 부려 놓았고

보라 그게 구름인지도 모른 채

그 위를 걷던 내 호흡의 모퉁이를 돌아도

그녀가 과학시간의 화학물처럼 건드릴 수 없는

거리에서 빛나던 그날을,

구름들의 면소재지는 내 오월의 그 소녀

선거가 지나치고 흑백의 소문들이 새롭게 나붙어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던 그 소녀

내가 가을이 되어 그 소녀 속에서 마른 풀씨 몇줌

훔쳐오는 날에도

그 면소재지의 구름들은 낡은 서기들처럼

뒤뚱뒤뚱 등나무꽃 마른 사연들만 뒤적이던

그날을,

 

구름의 노래 27

 

그는 말이 적었다

풀들의 생애를 얘기할 땐

붉은 눈물을 흘리던 그,

모든 것들이 제 슬픔을 넘거나

가난한 허리를 휠 때도

그는 붉은 사연들만 흘렸다

몇해 전 도시 변두리에서 만난 구름을

찾아 나섰다 했고

노을을 볼 땐 푸른 눈물을 흘렸다

그때 나는 그 피에로의 고향이

얼마나 먼 구름인지를 알지 못했고

돌아오는 길엔 떡갈나무 잎들이 흰 소름들을

아주 작게 건네주곤 했다

 

구름의 노래 28

 

종이 울릴 때마다 구름들이 몰려들었다

납작해진 이장과 마을사람들이 구름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우리 속에 가두자는 측과 추방하자는 측이

늦가을 내내 구름을 붙들어 두었다

겨울이 되자 더 많은 눈들이 그 마을에 머물렀고

어떤 구름은 뿔달린 이야기가 되어

지붕 밑 아랫목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 구름 지금은 면사무소 호적계의 서류철에 묶인 채

낡은 먼지를 몇 년째 뒤집어쓰고 있다

구름의 노래 32

 

맨홀 속 구름들은 향긋하다

꽃을 든 남자의 장마철 외출과

몇개의 포스트잇에 적힌 달력 속 사랑들이

그 속으로 흐른다

그렇다면 마릴린 몬로의 치마 속엔

얼마나 많은 구름들이 각선미를 뽐냈던 걸까

그 속으로 들어갔던 한 사내가

늦가을의 귀뚜라미가 되어

젖은 외투의 흰 사연들을 벗고서

초라한 모습으로 올라왔고

공중 저쪽엔 또다른 영화들이 띄엄띄엄

초가을의 모퉁이로 몰려들고 있었다

 

구름의 노래 49

 

몇개의 목마름을 지나쳐 바닷가에 이른다

몇개의 희미한 행선지를 지나쳐 푸른 손수건의

한 켠에 이른다

먼저 와 있던 소낙비가 엉거주춤 자리를 내주었고

나는 내 이마의 구름만 닦아내며

금방 축축해진 바다를 먼 옛날의 주머니 속에 구

겨 넣는다

 

구름의 노래 59

 

내 스무살 쯤의 구름은

밤늦도록 거리를 헤매거나

등나무들 뒤틀린 5월의 넝쿨 속을

파리하게 떠돌고서야

담장에 꽂힌 병조각을 으적으적 넘어오던

주황색 방황이었다

그 무렵 프린스의 퍼플레인은

내가 마지막으로 용서한 헤비메탈 구름이었다

 

구름의 노래60

 

봄이면 수레 가득 쌀을 싣고서

이웃마을로 멀어지던 아버지

그때 뒤를 따르던 몇 무리의 구름들이

이듬해가 되면 더 많은 부자가 되어

나의 집에 쌓이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구름의 노래 61

 

고요한 날엔 어떤 구름도 노래가 되지 못한다

어떤 노래도 구름이 되지 못하고

고요한 날엔 화분 속에 옮겨 심은 어떠한 가시도

선인장을 깨워주지 못하고

이젠 아예 고요만이 고요을 붙들고서

침묵에 매달려야 할 시간

이럴 때, 어떤 노래도 가시가 되거나 사막을 찌르

지 못하는

이럴 때 나는 맨 최초의 바람이 되듯

추억의 반대편으로 돌아가

내 거실의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내 등을 쿡 찌르고서야

먼 옛날의 비를 소환할 수 있다

 

구름의 노래 63

삐걱이는 새의 날들을 닫고서

구름을 호명한다

낡은 계단은 내 초현실주의의 이층으로 오르다가

오래 전 증발되었다

몇입 만 베어물어도 사라지고마는 허공

그 속, 살바도로 달리의 낡은 시계속에서

쭈르르 흘러내리던 구름이 거주했던 것을

나는 오래도록 침묵해 왔었다

 

구름의 노래 64

그 지방엔 푸른 가로수들을 빠져나오기 위해

보아야 할 이정표 하나 있다

박물관으로 가는 오후의 빗길과 늙고 움푹한

저수지를 빠져나오기 위해

확인해야 할 이정표가 하나 있다

그 구름,

그 지방에 체류된 채 낡은 페인트의 글씨에 붙박

혀 지낸지 벌써 20년째다

 

구름의 노래 65

겨울이면 공무원들은 도시 변두리로 모여든

몇개의 구름들을 녹이기 위해

한 차 가득 염화칼슘을 싣고서

그 구름들의 입구로 향한다

 

구름의 노래 67

오랫동안 헤매어야 오두막 한 채처럼 기다려 줄

구름을 찾았었습니다

오랫동안 헤매어야 마른 샘처럼 기다려 줄

구름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흑먼지 가득 들길을 걸어야

뿌연 회오리로 일어날 낮은 날들의 환영을 찾아

방황했었습니다

내 어머니의 젖줄처럼 쓴약을 발라놓아야 금지될

이야기를 수소문 하던,

그런 구름이 지상의 한 켠에 머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