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문학의 향기(공부방)

詩人 고영민의 시작법

언어의 조각사 2016. 9. 5. 09:47

詩人 고영민의 시작법



1. 자기의 핵심역량을 찾아라!

- 누구나 가장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찾으면 됩니다.

남을 따라하면 절대 최선을 다해도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잘 쓸 수 있는 것이 뭔지를 찾아야 합니다. 자기와 맞는 글쓰기를 찾으세요!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를 합니다.

산에서 경주를 하면 백이면 백, 토끼가 이깁니다. 거북이가 이기는 방법은 바다에서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토끼인지, 거북이인지 먼저 판단을 해야 합니다.

바다로 갈지 산으로 갈지 판단해야 합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하세요! 그걸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앵두 / 고영민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지나는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브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2. 차별화 해라

- <시창작 1>에서 자신의 핵심역량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토끼인지, 거북이인지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하여, 내가 거북이라고 판단을 해서 바다로 갔습니다.

그런데 바다에 갔더니 나 말고도 날고 기는 거북이들이 수두룩 한 것입니다.

그럴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저 역시 바다에 갔더니, 나와 비슷한 함민복 거북이, 이정록 거북이, 손택수 거북이, 문태준 거북이들이 먼저 장악을 하고 있더군요.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차별화입니다. 이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글쓰기의 승부를 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차별화의 전략으로 위트, 해악, 쉽게 쓰기, 12남매의 가족사 등을 가지고 승부를 걸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그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여러분이 토끼라고 판단을 했다면 토끼가 있는 곳을 한번 가볼까요?

그곳엔 이미 황병승 토끼, 김행숙 토끼, 김민정 토끼, 강정 토끼 등이 이미 토끼 마을을 장악했군요!

당신이 만약 조금 늦게 토끼 마을에 갔다면 어떻게 차별화 시킬 예정입니까?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총깡총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자~ 당신을 차별화 하시기 바랍니다!!



똥구멍으로 시를 읽다 - 고영민

겨울산을 오르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배낭 속 휴지를 찾으니 없다

휴지가 될만한 종이라곤

들고 온 신작시집 한권이 전부

다른 계절 같으면 잎새가 지천의 휴지이련만

그런 궁여지책도 이 계절의 산은

허락치 않는다

할 수 없이 들려 온 시집의 낱장을

무례하게도 찢는다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산중턱에 걸터앉아

그분의 시를 정성껏 읽는다

읽은 시를 천천히 손아귀로 구긴다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이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을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일 때까지

무참히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펼쳐보니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결이 부들부들해져 있다

한 장 종이가 내 밑을 천천히 지나간다

아, 부드럽게 읽힌다

다시 반으로 접어 읽고,

또다시 반으로 접어 읽는다



계란 한판 - 고영민


대낮, 골방에 쳐박혀 시를 쓰다가

문 밖 확성기 소리를 엿듣는다

계란 …(짧은 침묵)

계란 한 판 …(긴 침묵)

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계란 …(침묵)…계란 한 판

이게 전부인데,

여백의 미가 장난이 아니다

계란, 한 번 치고

침묵하는 동안 듣는 이에게

쫑긋, 귀를 세우게 한다

다시 계란 한 판, 또 침묵

아주 무뚝뚝하게 계란 한 판이 삼천 원

이라 말하자마자 동시에

계란, 하고 친다

듣고 있으니 내공이 만만치 않다

귀를 잡아당긴다

저 소리, 마르고 닳도록 외치다

인이 박혀 생긴 생계의 운율

계란 한 판의 리듬

쓰던 시를 내려놓고

덜컥, 삼천 원을 들고 나선다.



3. 경험을 써라! 가장 절실한 것을 써라! 줄거리(서사)를 만들어라!(공광규 시인의 시 작법과 동일)에서 한가지를 더 추가하면 '드라마틱'을 만들어라!


좋은 시에는 분명 드라마틱이 있다. 드라마틱을 만들기 위해서는 3미를 창출해야 한다.

3미란 바로 흥미, 의미, 재미이다. 드라마틱은 경험이고, 진실함이고, 줄거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흥미, 그리고 그 안에 의미를 집어넣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재미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흥미를 추구하면 소재주의에 빠진다 너무 의미만을 추구하면 잠언에 빠진다. 너무 재미만을 추구하면 꽁트가 된다.

이 상태를 얼마나 적절하게 간을 맞출 수 있는가가 시인의 관건이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은 대체로 간을 잘 맞춘다. 당신이 만약 음식 솜씨가 없고 간을 잘 못 맞춘다면 시쓰기를 일찍 포기하는 것이 좋다^^

우리 딸이 귓속말로 하는 말 “엄마가 끓인 라면보다 아빠가 끓인 라면이 훨씬 맛있어요!” 결국 시도 간을 맞추는 것이다.

얼마나 면발을 꼬들꼬들하게 할 것인지!, 냄비에 물을 얼마만큼 넣을 것인지! 불의 세기를 얼마만큼으로 조절할 것인지!!

퍼진 글을 내 놓는 것은 퍼진 라면을 독자에에 먹으라고 내놓은 라면가게 주인처럼 무책임한 것이다.



공손한 손 - 고영민


추운 겨울 어느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너와 동침을 한다 - 고영민

시외버스를 탄다

운주사행 표를 들고 자리를 찾으니 한 여자

내 옆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슬며시 다리를 비킨다

창문은 계속 풍경만을 버릴 뿐

말 한마디 붙이지 않고

순간 여자가 불상처럼 잠들어

나도 그녀의 이불 속에 입정한다

아, 너였구나

문득 내 어깨에 얹혀지는 머리

여자는 내 어깨 위 열반인 양 들고

삼천의 인연이었을 이 옷깃의 여자

등받이를 적당히 눕혀

외간 남자와 나란히 잠이 들었다

잠든 사이, 이불은 계속 울음을 틀어막지만

한 계집아이가 붉은 이불 속에서 기어나오고

미륵의 사내아이가 기어나오고

기어나오고,

날은 저물어 버스는 오체투지로

들녘을 넘고 고개 능선을 지나

마을마다 돌 하나를 올려놓는다

그녀와 하룻밤 천불천탑을 쌓고

와불을 일으켜 세울 즈음

누군가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어쩌나, 첫닭이 운다

그러나 아, 진정 용화세계가 너였구나

헝클어진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시 추스르며

와불은 스스로 일어난다

성급히 차문 밖으로 나오니,

일주문 안으로 사라지는 여자

천천히 불상 속으로 들어가 천년을

그 자리에 누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