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문학의 향기(공부방)

예술가의 인생은 미완성일 수 없다/이승하

언어의 조각사 2015. 1. 26. 09:57

예술가의 인생은 미완성일 수 없다 /  이승하

 

 

 

                                                                                  성찬경 시인(19302013)

 

  성찬경 시인은 1930년 생이니 일흔 고비를 막 딛고 올라선 분인데, 27연에 이르는 긴 시를 발표하였다.「未完成交響曲」은 일단 슈베르트의「미완성교향곡」에 대한 찬가로 읽힌다. 반세기 만에 그 곡을 듣고 노시인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 시인은 소년기에“세상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으니/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고 감상적으로 했던 말을 되풀이하기도 하고, “기적이 아니고서야./ 세상에 이런 음악이 존재하다니.” 하면서 「미완성교향곡」에 대해 최상급의 찬사를 바친다. 하지만 이 시는 음악 감상문 수준이 아니다.

 

  시의 앞부분은 시간에 대한 철학적 잠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의 본질은 순간인가 영원인가, 순간이란 것과 영원이란 것의 한계는 도대체 어디에 두어야 하나 하고 의문을 제기해본다. 1차 결론은 순간이 영원이며 영원이 순간이라는 것이고, 2차 결론은 음악이 순간이고 여운이 영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혹은 음향기기를 통해서 듣는 순간 그 음악은 허공으로 사라지지만, 내 마음 속에 그 음률은 감동으로 남기 때문에 영원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영감이 주렁주렁 열리는 순간에 음악가는 작곡을 할 것이고 화가는 그림을 그릴 것이고 시인은 시를 쓸 것이다.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매 순간, 그 예술가는 영원의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30대 초반에 죽은 슈베르트도 그러했지만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존 키츠의 경우는 어떠했는가. 몇 편의 서정시는 차치하고라도 장시 「엔디미온」과 미완성 서사시 「히페리온」을 남긴 존 키츠는 불과 25년 4개월을 지상에서 숨쉬다 간 시인이다. 「히페리온」은 하지만 결코 미완으로 끝나지 않았다. 슈베르트의 교향곡과 키츠의 시는 ‘미와 진실을 추구한 작품’이었기에 “영원한 완성”작인 것이다. 즉,「未完成交響曲」은 시간의 의미 및 예술의 현실성(“순간을 타고”)과 유한성(“다시 영원 속으로 사라지는”)과 영원성(“그것은 영원한 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시이다. 미완성의 영원한 완성이 남긴 긴 긴 여운이 나의 황혼에 달빛 오솔길을 열어주었다는 마지막 연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미와 진실을 위해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치는 한 예술가의 인생은 결코 미완성일 수 없으리라. (2001)

 

 

未完成交響曲 / 성찬경

 

1

 

시간의 본질은 순간이다.

시간의 본질은 영원이다.

 

영원에서 보면

아무리 긴 시간도 순간.

순간에서 보면

아무리 짧은 시간도 영원.

 

순간이 영원.

영원이 순간.

 

永遠이 열매처럼 영그는 靈感

靈感이 주렁주렁 열리는 瞬間

 

음악은 순간.

餘韻은 영원.

 

이게 음악이지.

하지만 정말 이런 曲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하나 뽑는다면

나는 「未完成」이다.

 

詩나 音樂이나

영혼의 구조의 드러남이라면

「未完成」이 드러내는 영혼보다

더 아름다운 영혼을 못 찾았기 때문.

 

반세기의 저 건너편

나의 소년시절 어느 날

「未完成」과의 운명적인 만남.

 

후란쓰 슈베르트…… 운폴렌데테……

이 무슨 신비의 呪文.

심포니…… No. 8…… H몰……

에리히 클라이버…… 베를린 필…… 텔레훈켄……

 

끝도 없이 듣고 또 들으며

나는 그 아름다운 슬픔,

슬픈 아름다움을 가누지 못해

흐느꼈다.

 

아름다워

다만 너무도 아름다워

흘리는 눈물은 무슨 눈물일까.

슬프고도 황홀한 삶이기에

황혼에 들면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소년기의 感傷이었겠지만.

‘세상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으니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

이렇게 내가 말했던 것은 사실이다.

 

2

 

잡박한 세월.

「未完成」은 침묵했다.

그러나「未完成」의 餘韻은

내 영혼 어느 깊은 골짜기에

妙香으로 끝내 감돌았을 터.

백발로 살아남아 다다른

이쪽 기슭.

다시 單化되는 정경.

老年은 제 2의 少年期.

반세기의 이별 끝에

다시 들은「未完成」.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기적이 아니고서야

세상에 이런 음악이 존재하다니.

 

저 호른 소리.

저것이 정말

지상에서 울리는 소리란 말인가.

 

어떤 영혼이기에

저렇듯 결 고은 흐름으로

트레몰로로

 

하늘에서 길게 하늘거리나.

오로라의 춤을 추나.

 

기쁨과 슬픔을 통틀어

心情의 全音域에 파란을 일으키는

이 깊은 아름다움은

지금까지 나의 삶에 고인 기억의 요소로는,

현실의 것들로는

도저히 나타낼 길이 없다.

 

차라리 未知의

想像의 한계 저 너머의

무슨 별 무슨 천사의 이름이라도 빌어

그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러나 저 가락 저 장단 저 울림은

憂愁의 朗朗한 저 交響은

현실일세.

지금일세.

 

음향과 회상과 그리움과꿈이

하나로 소용돌이치는

마음 안 이 자리를 무슨 자리라 할 것인가.

 

주룩주룩 흐르는 눈물.

마르지 않았구나.

소년기의 맑은 샘.

그렇지.

 

슈베르트는

나의 첫사랑이었지.

 

이제 주저 없이

선언해야겠다

긴 방랑 끝에

이젠 나도 존 키츠의

<美眞一如黨>의 黨員임을.

 

순간을 타고

다시 영원 속으로 사라지는「未完成」.

그렇게 해서

그것은

영원한 완성.

그 긴 긴 여운은

나의 황혼에

달빛 오솔길을 연다.

 

ㅡ『현대시학』 200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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