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 5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회] 독도 푸른 비망록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재생시키는 한 페이지 독도/ 김영미 조간신문 속에서도 석간신문 속에서도 역사의 행간을 놓친 독도의 출처가 모호하다 가끔 물새가 날아오르면 파도가 타전한 듯한 낯선 소식이 그 영토다 나는 그 섬이 그리울 때마다 도서관에 들러 제국의 침략역사를 대출받거나 내 젊은 시절의 끝 불면이 깊을수록 더 일찍 깨던 푸른 비망록 한편을 열어볼 뿐이다 살다 보면 봄날은 간다 세파의 파도 너머에서 보일 듯 말 듯 독도도 나의 젊음을 기억해주지 못 한다 언제부턴가 독도가 울면 나는 도시 저쪽의 박물관에서 유물을 탐색하며 근시안을 벗어날 비상구를 찾는다 세파에 희미해진 활자를 접어놓고서 부리나케 거실 한 편 오래전 잃어버렸던 내 젊은 시절의 채널, 독도를 켠다 고문서에 묻힌 망각의 페이지를 애써 재생시키며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4회] 환절기 앓이

안개의 사연들을 생각하며 내일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할 때 [골프타임즈=김영미 시인] 안개가 짙을수록 날씨는 화창하다고 합니다. 안개가 자욱했던 가을날의 새벽은 출근 준비로 바쁜 시간을 감상에 빠트렸습니다. 창밖의 하늘은 푸른 정기가 감돌고, 지상을 덮은 구름은 선계로 가는 길처럼 신비로웠습니다. 순간 신선이 된 듯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던 나의 상상은, 곧바로 안개의 행간에 잘못 뛰어든 이방인처럼 행복을 즐기기엔 늦가을의 낱말들이 모호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37층에서 신선의 구름을 보았지만, 예전에는 창문 위를 지나치는 발걸음과 승용차를 바라보며 먹구름 속에서 허우적거린 적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시련이나 외부와의 단절로 덜컥 암흑 속으로 가라앉는 긴 여정을 겪기도 하지만, 햇빛이 없다고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3회] 남한산성에 들다

- 한의 역사를 품고 오랫동안 버텨온 희망의 횃불 [골프타임즈=김영미 시인] 지난해 5월 친구와 함께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남한산성 둘레 길을 거닐며 오랜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된 남한산성은 연둣빛 날짜를 넘기며 간밤의 비로 몸살을 앓았는지 꽃잎 양탄자를 펼치며 반겨줍니다.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조선 인조 4년에 대대적으로 구축한 남한산성은 평균 고도 해발 480m 이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방어력을 극대화한 성곽이라고 합니다. 산성의 둘레가 12km에 이르러 산 위에 도시가 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분지라서, 백성과 함께 왕조가 대피할 수 있는 조선 왕실의 보장처(保障處)였다니….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그 위엄이 자랑스러웠..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2회] 밤하늘은 깨진 파일처럼 흐르고

[골프타임즈 김영미 시인] 오래전 팔레트엔 블루 & 그레이를 섞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별들의 회의주의와 별들의 희망 주의를 낡은 화실에서 광기어린 넋두리 한 편에 담아 별들을 초대했던, 그 사나이는 과연 어느 별에서 왔던 첩자일까요. 오늘도 나는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별이 되지 못한 별들의 공간으로 내몰린다거나, 삶의 무게가 버거워 회의주의에 빠질 때마다 난시의 그리움을 포기한 하늘에는 늘 고흐가 있었습니다. 누구나 별이 되거나 꽃이 되기를 원합니다. 별은 밤하늘이 있기에 빛을 발할 수 있고 꽃은 튼실한 뿌리와 강한 줄기 그리고 꽃받침의 조력이 있었기에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었겠지요. 나만이 빛나려고 모두가 별이 되거나 꽃이 되려고 한다면, 그 단체나 사회는 광활한 우주의 먼지로 전락하거나 거대한 숲으로..

김영미 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제 1회] - 2024. 02. 02

설날을 맞이하며 - 소한이 주는 위로 곧 설날입니다. 설은 겨울을 견디며 가슴에 봄을 심는 희망의 아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삶의 난독증에 휘둘리며 먼 옛날 설레임의 메카였던 설날의 풍습들을 잊고 사는 건 오히려 미덕이 된 듯도 합니다. 동네 방앗간의 가래떡 기계는 고향 마을로 마실 오지 않을 것이고, 시루마다 이불을 켜켜이 덮고 기다리던 아이들의 풍경도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시대의 설은 돌아오지 못함의 또 다른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중에도 우리는 푸근한 서정으로 서로를 보듬고 소통하며 설날을 기다립니다. 골프타임즈에서 연재를 시작한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을 통해 자신 몫의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즐거운 배회 나누시고 행복한 설날 되시길 바랍니다. 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