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담쟁이

언어의 조각사 2006. 11. 22. 17:59
 

담쟁이 

                                               김영미

 

채굴막장 탈출한 손끝이 핏빛이다


가파른 벽

오르고 오르다

숨 고르는 얼굴이 노랗다


척박한 담벼락에 넝쿨 뻗는 너처럼

음습한 막장, 가난의 굴을 뚫다

아담의 짊 벗고 하늘로 오르던 날

병실 밖 담쟁이는 짙푸른 날개 펴고

하늘과 햇빛을 굴리고 있었다


제 무게 내린 마디진 삶의 흔적,

실핏줄만 남기고 날개 떨군 담장아래

사분사분 쌓이는 그리운 얼굴


호흡기 줄을 달고 창밖 그리던

진폐에 갇힌 숨소리 들릴듯하여

담쟁이줄기에 귀기울여본다 


하늘담장에도

아버지가 캐낸 탄가루를 태우듯

넝쿨진 담쟁이가 발갛게 물들었다

 

2006.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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