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세례/ 김영미
한낮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햇살이 좁아지고
며칠 미열로 버티던 감기의 행방이
기관지 속으로 쏠린다
가을 한때
회상에 묻어두었던 릴케의 시집이
마지막 페이지로 몰리고
내 건조한 취미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플라스틱 시루 속 콩나물들이
푸른 음표의 영역을 줄여간다
틈새로 새어들던 물세례와
그때마다 검은 보자기 너머로 쏟아지던
12월의 햇살들,
그랬었구나
저 음표들이 검은천 속에서
그늘진 날들을 보내지 않으면
허튼 날개가 되어
탄식의 깊은 구렁텅이로 빠질 것이니
한낮의 콩나물들은 양날의 검이 되어
어둠과 빛의 경계를 넘어오거나
직립의 날들을 견뎌야 한다
와르르,
또 다른 물들의 뭇매가 몰려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 어둠의 음표들을 무엇으로도 덮어줄 수 없어
창가로 가 봄날의 햇살들을 단속하기 시작한다
미당문학14호
시와수상문학22.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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