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나무야 나무야 뭐했니

언어의 조각사 2018. 4. 26. 17:45

 

나무야 나무야 뭐했니 /김영미

 

 

라일락 향낭 터트리는

저 빗소리 베고 한숨 자고 나면

숲은 더욱 울창하겠지

푸르름 덧칠하는 풀들의 그림 뒤로 

버짐 먹은 고목은

겨울의 강 차마 건너지 못했나 했는데

긴 잠 떨치고 깨어나 연둣빛 혀 내민다

봄을 예열하던 진열대를 빠져나온

꽃들의 줄서기가 끝날쯤에야

감나무는 방명록에 서명 한다

두텁던 세사의 껍질 속

푸른 심지 돋우며 사랑을 앓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희망의 바람으로

가지마다 꽃들의 박물관을 짓고 있다

그곳에 마음 놓는 사이

사월의 날짜들이 지워지고 있다

향기롭던 그 전율

마른버짐 같은 그리움  

번져가는 녹음 속에 풀어 놓고

해묵은 경전 펼치며

빗방울 향해 뿌리를 뻗는다

고사목 향하던 가슴에 꽃눈 부푸는

저 아찔한,

 

 

2018.4.26

 

 

18.9 모던포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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