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문학의 향기(공부방)

[2013 신춘문예 당선작]

언어의 조각사 2013. 1. 18. 08:48

 

[2013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쇼펜하우어 필경사 / 김지명

 

안개 낀 풍경이 나를 점령한다

가능한 이성을 다해 착해지려한다

배수진을 친 곳에 야생 골짜기라고 쓴다

가시덤불 속에 붉은 볕이 흩어져 있다

산양이 혀를 거두어 절벽을 오른다

숨을 모은 안개가 물방울 탄환을 쏜다

적막을 디딘 새들만이 소음을 경청한다

저녁 숲이 방언을 흘려보낸다

무릎 꿇은 개가 마른 뼈를 깨물어댄다

절벽 한 쪽이 절개되고

창자 같은 도랑이 넓어진다

사마귀 날개가 짙어진다

산봉우리 몇 개가 북쪽으로 옮겨간다

초록에서 트림 냄새가 난다

밤마다 낮은 거래 되고

낮이 초록을 흥정하는 동안

멀리 안광이 흔들린다

흘레붙은 개가 신음을 흘린다

당신이 자서전에서 외출하고 있다

 

 

 

◆심사평 

  

해마다 시 쓰기 열정 많아 향후 발전 가능성에 무게

 

 

  예심을 통과한 열네 분의 작품들을 선자들이 숙독하고 논의했으나, 아쉽게도 올해엔 한눈에 띄는 당선작을 찾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일정한 수준의 기본기는 갖췄으나, 그 ‘너머’에 이르도록 끌고 가거나 들어 올리는 힘을 내재한 시편을 찾아내기란 꽤나 지난한 일이었다. 그러한 추동력이란 삶을 바라보는 서정적 진정성의 관점에서는 물론이려니와 언어 자체가 직조해내는 미묘한 ‘아우라’를 통해서도 발현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최종적으로 네 분의 작품들이 집중 숙고되었는데, 김지명의 ‘쇼펜하우어 필경사’, 지연식의 ‘가금의 서’, 박은선의 ‘흔적 하나’, 이도은의 ‘엄마는 외계인’이 그것들이다. ‘가금의 서’는 가장 활달한 지적 실험정신과 개성 있는 텍스트적 상상력을 보여주어 주목되었는데, 과유불급이랄까 시에 녹아들지 못한 생경한 언술이나 비유들이 흠결로 드러나 완성도라는 점에서 아쉬웠다. ‘흔적 하나’는 창문 틈에 죽은 곤충의 시체를 화자로 한 묘사적 상상력이 진정성에 닿아있어 끝까지 고려되었지만, 군더더기라 할 언술들이 많아 정련미가 부족했다. ‘엄마는 외계인’은 동화적 상상력이라 할 나름의 발성법을 갖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보였으나, 좀 더 웅숭깊은 시선과 시적 사유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주기를 바란다.

 

 

  고심 끝에 ‘당선작 없음’까지 고려되었으나, 해마다 시 쓰기의 열정을 불태운 투고자들의 고뇌와 절망을 감안하여 향후의 발전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쇼펜하우어 필경사’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쇼펜하우어 필경사’ 역시 수사적 완성도의 미흡함을 드러내고 있으나 앞으로 각고의 정진을 통해 문체를 획득하게 된다면, 오히려 이런 약점을 자신만의 시학을 구축하는 장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특유의 힘 있는 시적 언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심사위원 본심: 엄원태 조용미(시인), 예심: 안상학`김이듬(시인)

 

 

 

 

당선 소감 (김지명)

 

 

  꿈 높이 구두를 갈아 신은 아침 같았다. 불현듯 다가온 당신이 동굴 밖에 인형 하나를 그리며 소란했다. 당신의 소리 없는 노래를, 안무 없는 춤을, 감정 없는 사랑을, 동굴 속 어둠을 빌려 수없이 적었다. 당신과 내가 짝짝이 신발이란 걸 알아차린 어느 날, 당신은 떠났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이 호흡인 나날을 보냈다. 불안은 짐승 여럿이 사는 움막에서 동거했다. 침묵으로 수태 기간을 보내고 당신을 찾아 나선다. 당신이 날 알아볼 줄 알았다. 꿈 높이 구두로 능동의 영토에 첫 발자국을 만든다. 이제 또 다른 불안을 내 허파에 기른다.

 

 

  모험할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멀리 볼 수 있는 안목과 죽음을 담보로 시작에 임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무작정 시를 좋아하던 설렘을 어깨 힘줄로 길러 준 선목문학회, 에이스동인 혜경, 정현, 성진에게 고마운 마음 전한다. 끝으로 오랫동안 후견인으로 지켜봐 준 남편과 딸에게 기나긴 고마움을 표한다.

 

 

 

 

1960년 서울 출생

논리논술 강사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섬, 이유 / 김유경

 

 

이 섬에선 사람이 죽으면 바람에 묻는다

그건 섬의 풍토병 같은 내력이어서 여자는

바다로 떠나 돌아오지 않는 아비의 아이를

박주가리 씨앗처럼 품은 채 바람에 묻혔다

은행나무가 여자의 무덤이며 묘비명이었다

남은 여자들이 제 주검을 보듯

길게 울다 돌아갔다, 섬에서 여자가 죽으면

살아서 뜨겁고 애달팠던 곳이 먼저 젖는다

바람은 젖어 있는 것부터 시나브로 말린다

소금에 간이 밴 깊이를 모두 말려

눈물의 뿌리가 마른 우물처럼 바닥을 드러내면

영혼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이 바람의 법이다

하루 두 번 물마루 끝이 어물어물 붉어지고

꼭 쥐고 있던 바람의 손아귀가 스르르 풀리면

섬은 귀를 열고 듣는다, 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돌아오지 않는 아비들의 빈 배가 웅웅 우는 소리를

죽은 여자는 그 소리에 기대어 바람 몰래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 뭉텅뭉텅 사라지는 몸에서

눈동자는 빛을 잃고, 머리칼은 제멋대로 자라나온다

아이를 품은 움 같이 보드라운 궁륭, 그 곳에선

바다 밑바닥에서만 나는 해초 내음이 나날이 짙어졌다

마침내 바람이 여자를 온전히 데려갈 때

죽은 여자는 아이를 은행나무 잎 속에 묻어두고

떠난다, 홀로 누워 있었던 자리에

노란 은행잎이 수북수북 쌓인다, 가을 한 철 내내

바람의 장례가 제 열매 다 익도록 잎을 물들이지 않는

은행나무의 사랑 같은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바람이 먼 바다 부표를 향해 치솟아 올라 길을 잡고

여자의 푸른빛 인광은 그리운 바다를 향해

따뜻하게 흘러간다, 아이는 그 바다 어디쯤에서

돌아오지 못한 제 아비를 그대로 빼닮았지만

섬도 바람도 그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심사평

  

형식 뒤흔든 신인다운 패기 돋보여

 

  파악된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상식으로 굳어져 최초의 경이를 상실해버린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삶과 사물에 대한 실감을 끌어올 수 있을까.

 

  예심과 본심을 겸한 1차 심사를 거쳐 오른 작품들은 시 장르 고유의 구심점을 향한 몰입과 그로부터의 탈주로 크게 구별되었다. 서정성에 충실하였으나 새로운 모험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작품들 그리고 과잉된 탈주의지로 설명적인 산문투들이 먼저 제외되었다. 조립은 잘 되었으나 맥이 빠져 시적 울림에 실패한 작품들 또한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최종심에 오른 것은 박다닌, 최희명, 김유경 세 사람의 응모작이다. 우선, 박다닌은 소외된 삶을 조명하는 따듯한 시선에 호감이 갔으나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하는 고리가 작위적으로 다가왔다.

 

  심사위원들은 최희명과 김유경의 작품을 들고 팽팽한 긴장 속에 심사를 이어갔다. 최희명은 '고려인 집성촌'이라는 무거운 오브제를 절제된 감각으로 구조화하는 솜씨가 녹록잖았다. 견고한 형식미 또한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오히려 그 형식미가 시상의 확장을 방해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주제를 삶의 구체성 속에서 길어올리는 김유경의 시는 시상을 끌고 가는 기량에 있어서나 시어를 낯설게 만드는 방식에서 단연 돋보였다. 넘치는 수사의 욕망에 절제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으나 서사를 내장한 이미지들의 날렵함이 그 흠을 오히려 더 빛나게 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의 고른 수준도 신뢰감을 주었고, 무엇보다 시 너머에 대한 지향을 통해 고정된 형식을 뒤흔드는 신인다운 패기가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장고 끝에 김유경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합의를 보았다. 이 새로운 시인이 시 장르만의 특장을 고집스럽게 파고들어 가면서도 그 너머를 사유할 수 있는 무서운 신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허만하, 최영철, 손택수(이상 시인)

 

 

 

 

당선소감

 

'서른 전 등단' 만용이 현실로…스스로에 모진 시인될 것

 

  종종,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 아닌 '견디고 있다'고 느끼는 때가 있었다. 모두들 떠들썩하게 즐거운 때, 도저히 그 속에 섞여들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 막막함 속에서, 나는 줄곧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왔다. 그것은 희박하지만 여일하게 빛을 발하는 밤하늘의 별 같은 것이었다.

 

  애초부터 빈약하고 어수룩한 내 글이 삶의 방편이 되리라는 위험한 상상은 하지 않았다. 때문에 '쓴다는 것'으로 되돌아오기까지,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2010년 여름부터 시작된 나의 글쓰기는 다른 쪽으로 난 두 갈래 길을 합쳐 하나로 만드는 무모한 작업이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읽기를 게을리 했다. 기사를 쓴다는 명목으로 쓰기를 소홀히 했다. 앞서 간 이들의 빼어난 문장을 교묘하게 훔쳐와 내 것인 양 우쭐대기도 했다. 이 과분한 자리를 빌려 깊이깊이 고개 숙여 반성한다. 앞으로 다가올 새날은, 나만의 고유한 빛깔을 지닌 살뜰한 문장들이 정수리 위로 벼락처럼 쏟아지는 날들이길 바라본다.

 

  '시'라는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 철부지를 이끌어주신 정일근 교수님, 글 쓰며 동고동락한 경남대 청년작가아카데미 친구들, 맹랑한 후배 너그럽게 품어주시는 경남신문사 식구들께 이 영광을 돌린다. 애틋한 나의 가족과 친지들, '부족함'을 '가능성'으로 보아주신 심사위원님들, '서른 전에 등단하겠다'는 만용을 패기로 여겨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그리고 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 문장 겨우 쓰고 쉽게 두 문장을 지우는, 스스로에게 야박하고 모진 시인이 되겠다.

 

 

김유경

1985년 경남 창원 출생.

부산대 사범대학 졸업.

경남대 교육대학원 재학. 현재 경남신문 문화부 기자.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가난한 오늘 / 이병국

 

 

검지손가락 첫마디가 잘려나갔지만 아프진 않았다. 다만 그곳에서 자란 꽃나무가 무거워 허리를 펼 수 없었다. 사방에 흩어 놓은 햇볕에 머리가 헐었다. 바랜 눈으로 바라보는 앞은 여전히 형태를 지니지 못했다.

 

발등 위로 그들의 그림자가 지나간다. 망막에 맺힌 먼 길로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나는 허리를 펴지 못한다. 두 다리는 여백이 힘겹다.

 

 

연필로 그린 햇볕이 달력 같은 얼굴로 피어 있다. 뒤통수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양손 가득 길을 쥔 네가 흩날린다. 뒷걸음치는 그림자가 꽃나무를 삼킨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꽃이 떨어진다.

 

[당선소감]

 

대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창이 나 있었습니다. 늘 한쪽 창의 불이 꺼져 있기를 바라며 집으로 향했던 때가 있습니다. 어둔 방에 불을 켭니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흘렀고 빈방에서 저와 아버지에 대한 시를 씁니다. 월미도 유람선에서 쓴 시를 교실 뒷벽에 붙여놓았던 고등학교 2학년에서 어느덧 미끄러져 서른을 훌쩍 넘겼습니다. 신문에 제가 쓴 시가 놓이게 된다니 제 마음에 창 하나가 밝게 빛나게 되네요.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이번 생일이 1월 1일인데, 생일 선물을 너무 거창하게 받네요. 밖에 내놓은 아들 걱정하며 노심초사하는 어머니, 그 곁에 함께 하는 분당 아버지께도 감사드려요. 최원식 선생님, 김명인 선생님을 비롯한 인하대학교, 대학원 선생님들과 동문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탁경순 선생님, 꼭 찾아뵐게요. 강영숙 선생님, 이름 고맙습니다. 그리고 지금 옆에서 절 응원하고 같이 웃어주는 그녀, 고마워요.

그저 말 많은 선배에서 그래도 신춘문예 당선된 선배로 남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리네요. ‘멋진수요일’, ‘청하’, ‘시선’. 대학 때 만난 학회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제가 있었을까요. 숱한 세미나와 술자리들이 모두 기억에 남습니다. 그 곁을 함께 한 선후배 모두 고맙습니다. 이제 즐겁게 시, 쓰겠습니다.

 

[심사평]

 

통념을 깨는 상징을 찾아라, 감각의 명증성을 보여라, 생명의 도약에 공감하라, 세계의 찰나를 경이로써 보여주라. 좋은 시의 덕목으로 꼽을만한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껍질을 깨라! 도약하는 힘을 보여라! 마치 “알맹이의 과잉에 못 이겨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이 그렇듯이. “제가 발견한 것들의 힘에 겨워 파열”하고, 사물의 새로움과 내면의 고매함을 융합하며 붉은 보석이 밖으로 터져 나온다.(발레리, 「석류들」) 상상력은 늘 그렇게 독자를 익숙한 것들에 대한 놀라운 개안(開眼)으로 이끈다.

「이모의 가까운 해변」「골목을 들어 올리는 것들」「향리의 저녁 일지」「발의 원주율」「어제의 인사」「끌어안는 손」「오늘 너의 이름은 눈」「친구들」「가난한 오늘」「迷路庭園」「밀의 기원」「꽃 앞의 계절」 등을 최종심에서 읽었는데, 그것은 개성과 환유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속에서 무르익어 스스로 내면을 깨고 터져 나오는 시를 찾는 일이다. 익숙한 서정을 찾기 힘든 대신에 낯선 감각과 의도된 착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흐름은 주목할 만했다. 우리는 서너 편의 시를 손에 쥐고 오래 망설였다.

「가난한 오늘」을 두 시간이 훌쩍 넘는 고심 끝에 골랐다. 신체 말단이 잘리고 헐고 바랜 자는 상처 받은 자이고, 그 상처는 가난의 흔적일 것이다. 일체 엄살이 없다. 아픔을 과시하는 헤풂을 절제하고 가난에 형상을 부여하는 힘은 정신의 야무짐에서 나온다. 싯구와 싯구 사이에 여백이 그 시적 물증이다. 수사가 덜 화사하고 주제가 소박했지만 아픔과 미망에 대한 표현의 간결함에서 사물에 감응하는 시인의 정직과 내핍의 염결성을 느꼈고, 그것에 깊이 공감했다. 이 시인의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은 게 분명하다. 지금보다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가난한 오늘」을 당선작으로 뽑는 우리를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