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소금쟁이, 날아오르다 / 최정희
그녀가 오늘 한쪽 유방을 들어냈어 무거워진 한쪽이 사면처럼 기울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어 기울기를 가진다는 건 양팔저울 한쪽에 슬픔을 더하거나 덜어내는 것
가끔 또는 자주 비가 내렸어 그녀의 눈 속에 살고 있는 소금쟁이는 언제나 눈물의 표면을 단단히 움켜쥐었어 그렁그렁한 표면장력, 그 힘으로 소금쟁이는 침몰하지도 날아오르지도 못했어
오늘 그녀는 기울기를 가졌어 x축과 y축 사이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 걸음을 걸을 때마다 가슴에서 눈물이 호수처럼 출렁였어 그녀는 비로소 너무 오래 울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어 남은 한쪽의 젖꼭지가 짓무를 때까지 오늘 울기로 했어
소금쟁이가 떠났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
[당선소감] “훈풍같은 시로 따뜻한 위로가 되길”
불혹을 꿈꾸었다. 그때쯤이면 세상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마흔. 바람은 내 안에서 일었고, 그 어느 때보다 나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2월의 끝자락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보았다. 겨울의 햇살과는 다른, 맑고 따뜻함이 아련하게 묻어나던 햇살을.
나는 그 햇살 속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서점으로 가 시집 한 권을 샀다. 그것이 내 시의 출발이었다.
흔들린다는 건 내가 살아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나는 흔들리며 바람의 족적을 기록하고 싶다.
미풍, 혹은 훈풍의 바람 같은 시를 쓰고 싶다. 내 시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경상일보에 감사드립니다. 남편과 아들 지산, 딸 지인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Happy New Year~
[심사평] 생애의 비의가 배어있는 사랑스러운 작품
최종까지 남은 네 분의 작품은 그야말로 난형난제, 막상막하였다. 그만큼 응모작의 수준이 기성의 수준을 뺨칠 만큼 높았다. 깊은 생각 없이 그냥 유행의 물살을 타고 있거나 또 현란하게 변해가는 시대의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하고 고색창연한 시의 습관에 무심코 젖어있지는 않은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S, He takes a taxi〉는 새로운 기법의 멋을 부린 작품으로 맨 먼저 눈에 확 띄었으나 사변적인 말놀이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아쉬운 감을 지울 수 없었다. 〈하현달 소묘〉는 시적 은유의 모범답안 같이 안정된 구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어딘지 도식적이고 작위적인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죽방렴〉은 단순명료하게 세계와 자아를 A-B로 치환하는 솜씨가 돋보였지만 신춘문예 당선은 곧 한 시인으로의 탄생을 자리매김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시적 형상화의 중층적인 깊이가 좀 얕아 보였다.
당선작으로 뽑힌 〈소금쟁이, 날아오르다〉는 아주 세밀하게 직조된 ‘작품’이다. 도드라지거나 으스대지 않으면서 나직한 어조로 세계와 통화하는 태도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이다. 참신한 시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시 속의 ‘그녀’는 지금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영혼 속에는 표면장력을 잡아주는 소금쟁이 한 마리가 늘 있는 법이다. 곰곰 읽어볼수록 우리들 생애의 비의가 함초롬히 배어있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심사위원 오탁번
201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그 여자, 마네킹 / 강봉덕
때론, 패션도 종교가 된다
묵언수행 하는 그 여자
침묵으로 한 종파를 완성시킨다
그 종파의 교리는 계절을 앞질러 가는 것
한 계절 똑같은 웃음이나 빛깔
표정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계절에 이르기 전
그 여자의 설법은 고요하고 은밀하다
이 거리에 들어온 사람들은 주술에 걸리듯
그 여자의 짝퉁이 되기 시작한다
포교는 항상 중심에서 변방으로 퍼진다
짧은 치마처럼 간단명료한 표정
미끈한 팔다리로 사람들을 전염시키며
파격적인 노출도 교리가 된다
패션이 변할 때 마다
사람들은 새로운 표정을 만들며 순종적으로 바뀐다
경기불황이 몰려오면
그녀는 더 화려하고 빠르게 변신한다
사라진 추종자를 다시 불러들인다는 것은
침침한 눈으로 바늘귀에 실 꿰듯 힘겨운 일이지만
손바닥 뒤집듯 가벼울 수 있다는 듯
투명한 벽 앞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그 여자, 화려한 변신을 시작한다
나를 버린 사람들이 몰려든다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 할 때까지
[당선소감] ‘착하게 시를 쓰겠습니다’
올 겨울은 추운 날이 많습니다.
유난히 추운 날, 마음이 따뜻해지는 당선소식을 받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그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아직 내 글이 많이 서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 치열하게 글을 쓰라는 격려라 생각합니다.
시를 쓰는 일은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부족한 글에 이렇게 큰 상을 주신 것은 사랑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라 생각하며 천천히 쉬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겠습니다.
전북도민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리며 착하게 시를 쓰겠습니다.
‘시는 별 것 아닌 삶을 별 것인 삶으로 만든다’ 고 가르쳐 주신 동리목월 김성춘 선생님과 ‘치열하게 글을 쓰라’고 지도해 주시며
힘들 때 마다 격려해 주신 구광렬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공부한 동리목월문예대학 문우들, 사랑하는 아내와 딸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심사평] 세상을 대하는 폭이 넓고 진솔하여
책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응모한 것에 놀랐다.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희망적이다. 역시 정서적 궁핍의 탈출은 예술일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485편 가까이 되는 작품을 들떠 읽었다. 대부분의 작품이 신춘문예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한 신춘문예에 등장하는 소재에서 딱히 벗어나는 작품을 만나기도 어렵다. 그러나 놀랍게도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았다.
‘그 여자, 마네킹’, ‘사각형 속에 둥근 귀’, ‘물고기자리’, ‘기린’, ‘거실의 세렝게티’, ‘폐허를 말하다’, ‘담쟁이의 혈당체크’, ‘안녕, 살구’ 등이 끌렸다. 이 분들 모두에게 박수를 드리고 싶다. 그 중 ‘사각형 속의 둥근 귀’는 성숙된 작품임이 분명하나 익숙한 문체나 구절들이 거슬렸고, ‘물고기자리’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게 흠이 되었다. ‘거실의 세렝게티’는 단순한 소재를 끌어가는 솜씨가 돋보였으나 주제가 선명치 않았다. ‘기린’ ‘담쟁이의 혈당체크’ 등을 쓴 분의 독특한 상상력이 못내 아쉽다. 완성도도 약했지만 그 외에 다른 작품들이 힘이 되어주질 못했다.
마지막까지 손에 들린 작품은 ‘안녕, 살구’와 ‘그 여자, 마네킹’ 이었다. ‘안녕, 살구’외 3편을 낸 강봉덕의 작품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솜씨가 퍽 발랄하고 거침없었다. 조금만 더 숙련된다면 다음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하여 ‘그 여자, 마네킹’ 외 ‘짧은 휴식을 위한 변명’과 ‘홀쭉한 등’의 3작품을 낸 강봉덕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쾌히 뽑는다. ‘홀쭉한 등’과 ‘그 여자, 마네킹’ 둘 중 무엇을 수상작으로 정할까도 망설였다. ‘홀쭉한 등’으로 자꾸 시선이 갔으나 군데군데 매끄럽지 못한 점이 많아 ‘그 여자, 마네킹’을 수상작으로 든다. 3편 모두 현대적이면서도 건조하지 않고 세상을 대하는 폭이 상당히 넓고 진솔하여 수상자로 선정함에 망설임이 없다. 축하드리며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계속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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