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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성까지 만리장성으로 덮어씌워서야…”

언어의 조각사 2012. 6. 23. 08:42

中 황당한 동북공정에 발끈 김운회 동양대 교수


중국이 6000㎞에 이르는 만리장성을 2만㎞에 이르는 삼만리장성으로 확대했다는 소식에 학계는 술렁이고 있다. 이 문제를 두고 7일 김운회 동양대 교수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배운 고조선은 가짜다’(역사의아침 펴냄), ‘대쥬신을 찾아서 1·2’(해냄 펴냄), ‘삼국지 바로 읽기’(삼인 펴냄) 등을 내면서 국수주의에 치우치지 않고 고대사를 연구해 왔다는 평을 받아 왔다.

▲ 김운회 동양대 교수 ▲ 김운회 동양대 교수  

●“한반도까지 중국땅이라 말하려 무리수”

→먼저 만리장성이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가.

-대개 진시황이 흉노족을 막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명나라 때인 15~16세기에 대대적으로 고쳐진 것이다. 명 태조 주원장의 건국이념이 “오랑캐를 몰아내고 한족의 부흥을 이룩한다.”(驅逐胡虜恢復中華)였다. 한나라 이후 북방유목민의 지배를 받다가 이제야 한족 정권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런 명나라가 만리장성에 손댔기 때문에 당연히 만리장성은 한족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기네 땅이다. 일부는 기존 만리장성을 고치고, 여기다 험한 산세나 암벽을 이용해 장책(長柵), 변장(邊牆), 변문(邊門)을 추가로 만들었다. 이는 기존 만리장성에다 현재의 랴오닝성(遼寧省)을 연결한 것이다. 그러니까 한족은 만리장성 이남과 요동반도 정도만 자기네 땅이라고 본 것이다.

→만리장성이 삼만리장성으로 불어나는 과정은 어떠했나.

-2000년대 중반까지 만리장성의 총길이가 6000㎞이고 동쪽 끝은 베이징 인근 산해관(山海關)이라는 데 아무 이의가 없었다. 근거를 들라면 사기(史記)를 비롯해 수많은 자료가 있다. 그런데 중국은 2009년 랴오닝성 단둥지역, 그러니까 압록강 하구의 박작성(泊灼城)을 호산장성(虎山長城)으로 둔갑시켰다. 이 성은 당나라 침입을 막기 위해 고구려가 쌓은 성이다. 648년 당 태종의 침입에도 함락되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성쌓기 방식이나 출토유물이나 고구려식 우물 등으로 봐서도 분명히 고구려성이었다. 그런데 2004년부터 호산장성을 복구한답시고 고구려 유물을 훼손하고 고구려산성 위에다 중국식 만리장성을 덮어씌워 버렸다. 거기다 한족의 조상인 황제 동상까지 세웠다. 정말 웃기는 것은 중국은 이 성이 명나라 때 여진족을 물리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우기는데, 실제 성의 구조를 보면 각종 수비시설이 남쪽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다. 여진족을 견제하려고 했다면 북쪽에 수비시설이 몰려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것은 요동반도를 넘어 만주, 압록강 일대는 물론 한반도 북부까지 모두 자기네들 땅이라 말하고 싶어서다.

●“개라 부르더니… 중화민족이라 우겨”

→우리 고대 사학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사실 중국보다 우리 책임이 더 크다. 한족이 북방유목민을 분열시키기 위해 지어낸 주장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가령 삼국사기를 보면 말갈족이 지금의 서울·경기지역에 거주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도 우리는 말갈하면 무슨 미개한 북방 오랑캐 취급을 한다. 조선시대 소중화에서 벗어나질 못해서다. 우리 고대사는 시베리아-몽골-만주-한반도로 이어지는 유목민의 역사다. 서쪽으로는 전연과 북위, 동쪽으론 고구려와 백제, 신라까지 모두 이어진다. 이런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싸움은 점점 어려워진다.

→중국도 학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법도 한데 왜 이러는 건가.

-만리장성의 강력한 상징성을 활용해 현재 정치적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번 되돌이켜 생각해 보자. 역사적으로 한족과 사이(四夷)를 구분한 뒤 물과 기름 같다는 둥, 절대 융합될 수 없다는 둥 해온 것은 그들 자신이다. 한족은 한국인을 아예 예맥(濊貊)이라 불렀다. 똥고양이다. 다른 민족들도 개, 돼지, 승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개, 돼지, 승냥이도 중화민족이라고 우긴다.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동북아재단, 북방사 연구자 위주 개편을”

→대응방법이 있을까.

-동북공정이라고 법석을 떨지만 사실 이 문제는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당시 중국 중등 교과서를 보면 타이완, 한국, 필리핀을 회복해야 할 영토로 명시해 뒀다. 이제 비로소 그 실체가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동북아역사재단을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일본과의 문제가 독도 문제 정도라면,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 역사 자체를 말살하는 작업이다. 어느 것이 더 시급한가. 북방사 연구자 중심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여기다 중국의 역사전쟁은 한국뿐 아니라 주변 민족 모두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과의 연합같은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엿가락 만리장성’ 中의 오만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홈페이지에는 만리장성이 중국 허베이(河北)성의 산해관(山海關)에서 간쑤(甘肅)성의 가욕관(嘉?關)에 이르는 길이 6000㎞의 군사적 구조물이라고 정의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만리장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만리장성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진시황 때였는데 북방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전 여러 제후국의 성을 연결하기도 하고, 일부는 새로 수축하기도 했다. 만리장성은 1000여년이 지난 다음 몽골의 재림을 몹시 두려워한 명 왕조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중건됐지만 한족이 아닌 만주족 치하의 청 왕조 때부터는 더 이상 사용 가치가 없는 폐물이 돼 버렸다.

김정열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그 만리장성이 지난 5일 재탄생했다. 이날 중국국가문물국의 퉁밍캉(童明康) 부국장은 베이징 근처 만리장성의 거용관(居庸關)에서 2007년부터 진행된 장성자원조사의 결과를 공표했다. 그는 중국 역대 장성의 총 길이는 2만1196㎞에 달하며, 관련 유적은 전국 15개 성·시, 4만3721곳에 분포해 있다고 선포했다. 놀랍게도 유네스코의 그것보다 서너 배 부풀려진 새로운 장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직 그 전모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 새롭게 부풀려진 장성은 서쪽의 신장(新疆)에서 시작돼 동쪽으로는 랴오닝(遼寧)성, 지린(吉林)성을 거쳐 러시아 국경에 연한 헤이룽장(黑龍江)성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이번 일로 인해 우리 조상의 옛 터전에 남겨진 고구려와 발해의 성까지 저들이 만들어낸 이 ‘장성’에 편입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국 정부가 새롭게 장성 유적에 대한 조사를 한 이유는 세계인 모두의 문화유산인 만리장성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더 잘 관리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는다.

지난 10여년 동안 중국 정부는 역사를 앞세워 이른바 중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사업을 꾸준하게 진행해 왔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이 그렇고,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이 그렇고,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이 그렇다. 중국은 이들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진행한 학술 사업의 목표는 지극히 정치적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저 넓은 땅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은 ‘중화민족’의 아들과 딸이다. 그래서 중화민족은 유구한 시간을 함께 겪어 온, 그래서 입증할 수 있는 역사적 실체라는 결론을 얻고 싶은 것이다. 지금의 ‘만리장성 늘리기’ 또한 이런 시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게다가 이번 일로 인해 우리 선조의 문화적 유산까지 상처를 입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우리는 시급히 그 내용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 우리 조상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이 저들의 허구에 동원됐다면 분명한 어조로 항의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고 해서 그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는지 거듭 반성해야 한다. 저들이 만들어 낸 허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연구에 입각한 학문적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만리장성은 특수한 역사적 배경에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이다. 거기에 정치적 목적을 위한 가공이 더해졌다면 만리장성은 그 본질적 가치를 상실해 버리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만리장성이 훼손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나서 ‘정중히’ 항의해야 한다. 왜곡은 사물의 본질을 흐리고 그 가치 또한 훼손하게 된다. 그냥 놓아두면 언필칭 인류의 유산인 만리장성의 가치가 허물어지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김정열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