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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연/이병률

언어의 조각사 2009. 9. 9. 11:58

          어딘가를 향하는 내 눈을 믿지 마오
          흘기는 눈이더라도 마음 아파 마오
          나는 앞을 보지 못하므로 뒤를 볼 수도 없으니
          당신도 전생엔 그러하였으므로
          내 눈은 폭포만 보나니
 
          믿고 의지하는 것이 소리이긴 하나
          손끝으로 글자를 알기는 하나
          점이어서 비참하다는 것
          묶지 않은 채로 꿰맨 것이 마음이려니
          잘못 얼어 밉게 녹는 것이 마음이리니
 
          눈 감아도 보아도 보이고 눈을 감지 않아도 보이는 것은
          한 번 보았기 때문
          심장에 담았기 때문
          눈에 서리가 내려도 시리지 않으며
          송곳으로 찔러도 보이지 않는 것은
          볼 걸 다 보아 눈을 어디다 묻었다는 것
 
          지독히 전생을 사랑한 이들이
          다음 생에 앞을 못 본다 믿으니
          그렇게라도 영혼을 씻어야 다음 생은 괜찮아진다 믿나니
 
           많이 오해함으로써 아름다우니
 
          딱하다 안타깝다 마오
          한 식경쯤이라도 눈을 뜨고 봐야 삶은 그저 진할 뿐
          그저 나는 나대로 살 터 당신은 당신대로 잘 살기를
          내 눈이 허락하는 반경 내에서 연緣은 단지 그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