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어머니와 문창호지

언어의 조각사 2007. 2. 27. 16:43
 

어머니와 문창호지

                            김 영 미

 

돌계집 10년 세월

대를 잇지 못한 송구함으로

까맣게 사그라들던 가슴 속

염원의 불꽃일어

작은 몸 조각내

여섯 남매 기르신 커다란 당신

묏채같은 멍에를 가슴에 달고

살얼음판 시집살이

순종의 꽃 피워 기도하며 사시더니

돌계집 탈피하여

사늑하던 모정의 길 열리니

층층이 내려앉은 가년스런 살림에도

여섯 남매 웃음소리는 보석보다 빛났다

뚫린 구멍새로 호령하던 황소바람

문지방 넘나드는

곰살궂은 천진함에 슬금슬금 도망가고

뚫어진 창호지 바르고 덧바르던 어머니는

손주가 만든 문 창구멍 바라보며

햇살 같은 미소로 매만지신다

마냥 크게만 보이던 당신은

조그만 노인이 되었지만

어머니의 작은 우주 속에선

해와 달이 뜨고 별이 총총 피어납니다

*** 예전엔 최고의 악담이 "평생 문 창호지 한번만 바르고 살어라."라 한다.

평생을 자식 없이 살라는 저주의 말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결혼 10년 만에 나를 낳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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