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바람의 전령에게

언어의 조각사 2007. 2. 22. 16:27

  

바람의 전령에게

                         김 영 미

 

그대에게 쓰는 눈물빛 편지는

창 밖 눈처럼 쌓여만 가는데

하늘 메아리로 돌아 올 줄 알기에

흔적 없이 가슴으로 녹아듭니다

 

달빛아래 흐드러진 사과 꽃 밟으며

봄은 또 하나의 하늘을 여는데

아버지 등에 핀 소금꽃처럼

가슴 속 봄은 아릿한 현기증입니다

 

독한 그리움이 멍울진 

갈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처럼

그대 거푸집만 끌어안은 난

빈 들녘을 지키는 허수아비입니다

 

빛바랜 일기장 갈피갈피엔

비늘선 추억이 미소 짓지만

그리움에 여윈 빈 가슴은

황량한 바람만 술렁대고 있습니다

 

그대는 머물 수 없는 바람입니다

 

2003.01.24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 파  (0) 2007.02.27
이방인의 거리에서  (0) 2007.02.27
  (0) 2007.02.14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0) 2007.02.06
옥수수대  (0) 2007.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