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여밈/ 김영미
일상의 산책로를 버리고
누군가 지상의 기억을 닫고 들어가
무덤 하나 지키고 있는
저녁의 뒤안길을 서성인다
형체가 사라지는 저뭄의 끝에서
더 명료해지는 새 울음과
한낮의 줄기찬 나무들이
서로의 간격을 엄격하게 지키다 그친
알 수 없는 검푸름의 안쪽을 걷는
이곳의 고요는
산자의 것인가 죽은자의 몫인가
죽는다는 건 새장을 벗어난 새가
자리 형식을 버리지 못한 채
더 큰 구속 틀을 찾는 건 아닐까
한낮의 허망을 비우며 뒤안길을 걷는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스치던
한때의 얼굴들
봄날의 말수를 줄이며 건넜던
고요함의 곁
누군가의 죽음이 남겨 놓은 울컥한 잠언들
이승에서 가깝다는 건
향기로운 기억들이 떠나지 못함일까
뿌리내리지 못한 봉분의 잔디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흔들고 있다
[시작메모]
- 생이 끝나는 어느 날이 온다면-
한낮의 허기를 채우고 나면 가끔은 회사 근처에 있는 신들의 정원을 걷는데,
명성과 치부도 소용없이 나란히 하늘로 향한 길에는 봉분들이 즐비하다.
몇몇은 석벽에 갇혀 산자의 명분을 치켜세우고,
더러는 덩굴에 잠식된 봉분이 이승의 흔적으로 남아 흉물스러운데,
비움의 산책길은 사유의 고리로 무겁다.
나의 생이 끝나는 날엔 봉분은 남기지 말고,
가장 행복한 미소만 담아 향기로운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무덤은 살아남은 자의 위로다.
흔적만 남긴 봉분은 산자의 가슴, 그들마저 떠나면 존재는 지워지리니,
저마다의 가슴에서 의미가 되는 그저 한 줄의 시로 남고 싶다
죽은 자들 궁전에 닿고 나서야 시를 쓰는 이유에 답을 적듯이...
▼ 골프타임즈 가는 길
골프타임즈 모바일 사이트,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23회] 생의 여밈 (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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