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24회] 여름나기

언어의 조각사 2024. 7. 19. 15:58

- 마음에 마법 걸기

 

여름 나기

 

여름 커피를 비우며 보았다
에어컨 냉기가
잔 속에 쌓이는 사이
블라인드는 얼마나 불손했던가

 

오만하다는 것
나는 살아오면서
가슴 속 가시랭이를 다스리지 못해
실핏줄 끝까지 나아가
겨울을 견디는 이들에게 손 내민 적 없고
성냥팔이 소녀의 가난을 말하지 못했다

 

영혼의 윤활유가 부족할 때면
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고양이가
물그릇을 자주 핥는 피서를 넘겨다 보며
겨울 숲을 생각한다

묵상과 고요를 딛고 선 나무들

태양이 점점 멀어지는 건
블라인드가 나태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것
지구가 더워진다고 떠드는 TV에 마스크 채우고
에어컨을 끈다

 

빙산 위 북극곰을 불러들이는 빙수로
시원한 마법을 걸어도
빈 잔에 채워지는 건
여름날의 열기와 오존층의 비명 뿐

 

지나간 겨울에 그리던 그 여름
느슨해 지려는 신경 줄 팽팽히 당기며
또 다시 찾아올 하루 치 저녁을 향해
고양이 피서법을 시도해 본다

 

[시작메모]

 

-하늘에게 편지라도 써야 할 듯 구름의 기척들이 어수선하다.

유월 장마에, 칠월 무더위, 소나기까지 헤살을 부리고 있습니다.

허공이 주술을 부리는지  소나기 장마가 쏟아지고,

홍수에 잠긴 지구 반대편은 가뭄으로 갈라진 강바닥을 드러냅니다.

 

계절의 질서가 불안정한 여름.
새들도 수런거리고 대지의 생명들은 아프다고 아우성입니다.

며칠 태양과 구름이 번갈아 들락거리던 칠월에 다시 초복을 맞이하며,

천정에서 쏟아지는 에어컨 바람에 눅눅한 호흡을 위로받습니다.

 

빙산을 상상해 보는 한여름.
장마와 태풍으로 불편한 동거를 계속 하면서도,

우산과 외출할 수 있다는 건  칠월의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구름이 잠시 햇살을 비집고 나와 빨랫줄에 희망의 빛을 걸쳐 놓고는

여름나기를 하고 있습니다.

삽화:박소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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