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21회] 감나무 아래서

언어의 조각사 2024. 7. 8. 20:35

- 유월의 평화 속에서 추억의 유년을 당기며

 

유월을 논하려면 또 다른 길로 남겨진 6.25가 있어서 영토는 비좁다.

먼 옛날의 허기를 달래며 소통하지 못하는 그 벽에 가로막힌 상생의 길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열 수 있을까?

생각과 회상의 본질을 여닫는 사이에도 꽃들의 장르는 소리 없이 바뀌고 평화로운데....

다시 온 유월에도 습기 찬 호흡에 발소리를 줄이며 화합하지 못하는 사상과 이권 사이를 비집고 

분쟁 역사의 내시경 속 뒷짐 진 사연의 속내를 살핀다.

역사는 과거들만의 미로다. 망초꽃의 하얀 환영에 실려 유년으로 달려가는 내 안의 멀미들,

그 속에서 고요를 뭉쳐 환영을 부풀리면 보리 이랑을 뒤로 어머니가 건네던 빨간 산딸기가 있다.

오늘도 추억의 궤도 밖에서  열매를 맺는 유월의 감나무 아래 유년의 기억을 소환하며

싱그런 미래를 충전 중이다.

 

 

감나무 아래서/ 김영미

 

햇살을 퍼 나르는 보리 내음이 싱그럽다
오전 내내 바람의 선율을 퉁기던
몇 개의 깜부기들
오후가 되면서 시든 풀빛으로 낮아진다

 

유월은 누군가 그리다 만 유화일까
산비탈을 지키는 몇몇 비문이
산꿩의 긴 울음을 삼키고 있는 오후
논두렁을 빠져나온 자전거 하나
외진 속도를 재촉하며 마을로 사라지고

 

먼 옛날의 풍경이 등 돌리며 사라지는 길목에서
발 저리도록 서서 음미하는 이유는
저것들을 지키기 위해
더 더딘 속도로 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하리

 

해마다 유월이 오면
달거리 하듯 엄마를 그린다

 

보리 이랑 깜부기 같은 기억의 창 너머
낡은 주소지에 앉아 햇살을 줍던
엄마 바라기 어린 소녀가
아직 풋기 덜지 못한
유월의 감나무 밑을 서성이고

 

가파른 고샅길엔
소문이 끊긴 집안을 지키던
녹슨 펌프가
기억의 마중물을 기다리고 있다

 

삽화=박소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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