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 김영미
문이 열리자 폐 속 깊이 스며드는 아버지의 부피,
어둠 한구석의 곡괭이와 탐조등이 유품처럼 빛난다
상속이란 헛간의 시간을 보내야만 완성되는 것인가
채굴막장의 불꽃 튀던 서슬 오간데 없고
울분마저삭이며 녹슬어간 청춘이
빛을 잊은 듯
어둔 구석에서 먼지를 덮고 있다
평생을 막장에서살았으니
어둠이 더 익숙했을 아버지 분신은
몸속으로부터 세월의 각질을 밀어내고 있다
거미줄에 갇힌기억은 낡은 그리움으로
더깨입은 망각을 털어낸다
부재의 녹을 떨군 세월의 무게는
빛을 업고날아가는 먼지처럼
저리도 가벼울 수 있는가
삐걱대는레일에 몸을 싣고 나오며 살았음을 느꼈을,
간드레불빛 출렁이며 들던 오두막
작업복 먼지처럼 엉기던 피붙이를 희망으로 알던
그 아버지가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소리 없이 무의미한 존재로
서서히 몸에서밀려난 각질처럼
내 자식에게서 지워져갈 존재인 내 안에서
아버지의 녹슨 곡괭이가 구멍을낸다
혹자는
존재의 상실을 손끝에 놓고
부권의 몰락이라 했고, 자본주의 폐해라했지만
아버지는 내 존재의 마중물이다
어둠을 뚫고 나온소리 없는 메아리는
아직도 허공을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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