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도 여인이었어라/ 김영미
그녀가 닫고 떠난 서랍 속 구찌베니가 말을 건넨다
지워진 날들은
모성 그늘에 숨은 여심의 부재일까
서랍을 열자 미처 그리지 못한 입술 흔적들
그 붉던 날들이 길다랗게 앓고 있다
유폐된 그녀의 심중을 훔친 나는
먼지 낀 알리바이 속에서
누군가 보내온 메일을 뒤적이고
커피찌꺼기를 비우며
사막 속 그녀의 일상을 더듬는다
여과지에 남은 커피향처럼
중독된 그리움은 그리움을 낳고
잠든 여심의 비늘을 북돋운다
그녀가 던지고 간 화두였을까
먼지를 걸러낸 도시 그림자가
태양의 입술을 훔쳐
구찌베니에 숨을 불어 넣는다
그 순간,
사막에서 깨어난 붉은 언어들이
태양이 달궈놓은 세월의 허기와
빈사賓師의 예언 보다 빛난다
나는 그녀가 건넨 나르시시즘 비늘을 세우고 서랍 속으로 들어선다
15.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