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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언어의 조각사 2020. 9. 18. 22:41

엄니도 여인이었어라/ 김영미

 

그녀가 닫고 떠난 서랍 속 구찌베니가 말을 건넨다

 

지워진 날들은

모성 그늘에 숨은 여심의 부재일까

서랍을 열자 미처 그리지 못한 입술 흔적들

그 붉던 날들이 길다랗게 앓고 있다

 

유폐된 그녀의 심중을 훔친 나는

먼지 낀 알리바이 속에서

누군가 보내온 메일을 뒤적이고

커피찌꺼기를 비우며

사막 속 그녀의 일상을 더듬는다

 

여과지에 남은 커피향처럼

중독된 그리움은 그리움을 낳고

잠든 여심의 비늘을 북돋운다

 

그녀가 던지고 간 화두였을까

먼지를 걸러낸 도시 그림자가

태양의 입술을 훔쳐

구찌베니에 숨을 불어 넣는다

그 순간,

사막에서 깨어난 붉은 언어들이

태양이 달궈놓은 세월의 허기와

빈사賓師의 예언 보다 빛난다

 

나는 그녀가 건넨 나르시시즘 비늘을 세우고 서랍 속으로 들어선다

 

15.6.23

 

https://youtu.be/_P8DCSsNow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