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날 사로잡은 Issue

허수경시인

언어의 조각사 2018. 10. 24. 14:53

 

     - 허수경

 

 

낫을 가져다 내 허리를 찍어라

찍힌 허리로 이만큼 왔다 낫을

가져다 내 허리를 또 찍어라

또 찍힌 허리로 밥상을 챙긴다

 

비린 생피처럼 노을이 오는데

밥을 먹고

하늘을 보고

또 물을 먹고

드러눕고

 

 

-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

 

* 허수경 : 1964년 경남 진주 출생.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독일 뮌스터 대학교 대학원 고대근동고고학 박사.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 장편소설 『박하』 『아틀란티스야, 잘 가』 『모래도시』, 동화책『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 번역서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 형제 동화집』 등을 펴냈다. 2018년 10월 3일 독일에서 암투병 중 타계했다. 향년 54세.

 

 

이십 대에 시인은 저렇게 시를 썼나 보다. 낫에 찍힌 허리로 버티면서. 그러고도 모자라서 다시 허리를 찍어라 부탁하면서. 물론 이 말은 비유다. 허리가 잘린 것에 방불한 마음의 상태가 있었을 것이다. 쓰러지지 않을 만큼만 겨우 먹으며, 기진한 채로 피 흘리며 써야 하는 게 시였던가. 그 무용(無用)한 일에 힘을 다해선지, 이 시인은 지금 많이 아프다 한다. 조금 덜 아팠으면 좋을 텐데.

 

이영광 시인ㆍ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시인 허수경의 죽음

 

거진 반생애를 독일에 살면서 향수와 모국어에 대한 허기를 식량으로 글을 써온 시인이 어느 날 죽음과 마주쳐 ‘혼자 가는 먼 집’의 길을, 그 멀고 캄캄한 길을, 너무나 멀고 캄캄해 등불 없이는 갈 수 없을 것 같은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모국어로 이루어진 자신의 책이 등불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수만리 저편의 너는 집에 없었다. 네가 집에 없었으므로 나는 기분이 좋았다. 너는 어디론가 가서 너의 현재의 시간을, 단 하나, 인간에게 주어진 살아 있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므로.’

 

위의 글은 2005년 가을에 출판된 시인 허수경의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에 수록된 ‘작가의 말’이다. ‘모래도시’는 고고학도였던 허수경이 발굴 작업을 한 도시를 일컫는다. ‘작가의 말’에서 ‘너’는 허수경 자신으로 읽힌다. 독일에 사는 시인이 한국에 사는 ‘나’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다. ‘나’는 시인의 ‘다른 나’일 수도 있고, ‘과거의 나’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너’가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므로 기분이 좋았다는 것이다. ‘신도 인간도 다 떠난 기억의 골짜기’에서 생명의 흔적만을 찾아왔기에 현재의 시간, 살아 있는 시간이 한층 사무쳤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현재의 시간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지난 10월3일 독일 뮌스터에서 위암으로 타계한 것이다. 향년 54. 허수경의 동생 허훈은 “어젯밤에 소식을 들었다. 누나는 2011년 진주에 다녀간 게 마지막 고향 길이었다. 처음 귀국했을 때 공항에서 가족을 찾던 누나의 표정을, 향수병과 두려움에 찬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경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시인으로 등단한 허수경이 한국을 떠나 독일 뮌스터대에서 고대근동고고학 공부를 시작한 것은 1992년이었다. ‘존재론적 변신’으로 표현해야 할 만큼 삶의 형태를 통째로 바꾼 것이다.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인 교수와 결혼하고 타계할 때까지 26년 동안 글쓰기를 쉼 없이 이어온 데에는 모국어에 대한 허기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허수경은 <존재할 권리>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이 나라의 말, 설렌다, 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그 말 앞에서 내 마음은 요지부동, 꼼짝하지 않는다. 그 말은 나를 설레게 하지 않는다. 나는 내 말 속에서 설렌다’라는 문장으로 모국어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향수를 토로했다.

 

1995년 가을 잠시 귀국한 허수경을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다 어린 시절 처음 기차를 타고 간 도시가 외가인 진주라고 말했더니 어둑신했던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가 자란 남쪽 지방에는 잘게 썬 방아 잎과 산초가루를 넣어 추어탕 맛을 내곤 했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이면 어디에 있든 나는 그 냄새를 그리워했다.’

 

허수경이 그리워한 추어탕 냄새 속에는 태어나고 자란 진주라는 공간과 그 속에 살아온 ‘과거의 나’가 아늑히 잠겨 있을 것이다. 2005년 가을에 펴낸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에서 4편의 시를 특별히 ‘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옮겨놓은 것은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의 표현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그 흔한 영혼이라는 거 멀리도 길을 걸어 타박타박 나비도 달도 나무도 다 마다하고 걸어오는 이 저녁이 대구국 끓는 저녁인 셈인데’(<대구 저녁국>)를 ‘그 흐저다한 혼이라는 길이 말종이 먼재도 길 타서 타박타박 나배도 달녁도 낭구도 마다코 걸어다미는 이 저녁 새 대구국 기리는 저녁센데’로 옮겼고, ‘거친 손을 뱃사공이 내밀며/ 가자, 가자, 할 때,/ 그때 어디로,/ 라고 묻지 못하는 길/ 오랫동안 걸은 듯’(<가을 물 가을 불> 부분)을 ‘거버덩한 손 사공네 내밀며/ 가입시더, 가예, 할 적,/ 그녁 어데로,/ 라 청하지 못다한 길/ 오래 하등히 걸은 듯’으로 옮겼다.

 

작가의 죽음이 여느 죽음과 약간 다른 것은 작품이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작품이란 뜻 그대로 작가가 만든(作) 물건(品)이다. 물건은 생명체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만든 물건의 경우 생명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은유의 차원에서 작품은 생명체다. 이 생명체가 작가의 삶과 죽음 사이에서 스스로의 빛으로 삶과 죽음을 비춘다. 작가의 죽음만이 지니는 고유성은 여기에서 형성된다.

 

허수경이 위암 투병 중이던 지난 2월 출판사 편집자에게 편지로 자신의 상태를 알리면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세상에 뿌려놓은 제 글빚 가운데 제 손길이 다시 닿았으면 하는 책들을 다시 그러모아 빛을 쏘여달라’고 자신의 소망을 전했다. 거진 반생애를 독일에 살면서 향수와 모국어에 대한 허기를 식량으로 글을 써온 시인이 어느 날 죽음과 마주쳐 ‘혼자 가는 먼 집’의 길을, 그 멀고 캄캄한 길을, 너무나 멀고 캄캄해 등불 없이는 갈 수 없을 것 같은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모국어로 이루어진 자신의 책이 등불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정찬 소설가 / 한겨레 2018-10-11 ‘정찬, 세상의 저녁’

 

허수경 시인이 돌아가셨습니다/ 박진성



 허수경 시인이 돌아가셨다. 새벽에 깨어서 이것저것 보다가 우연히 인터넷 신문을 보다가 알게 되었다. 말기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 일로 응원을 하고 있었는데 죽음은, 언제나 느닷없이 찾아온다. 1964년 진주 출생이니까 향년 55. 새벽에 깨어서 무심하게 앉아 시인이 남긴 시집과 산문집을 들춰보고 있다.

 

시인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허수경 시인에게, 두 번째 시집 추천의 글을 받은 빚을 지고 있다. 내가 아는 한 허수경 시인은, 가장 순결한 영혼을 지닌 사람 중 한 명이다. 만약에 영혼 같은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간절하게, 이제 막 세상을 떠난 한 사람에게 기도가 가 닿으라고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자세를 고쳐 앉고 시인이 생전에 남긴 시 한 편과 짤막한 산문 하나를 읽는다. 좋은 데로 가시는 중이라 믿는다. 언어도 내려놓고, 계절도 내려놓고, 편하게 쉬셨으면 좋겠다. 책상의 스탠드 불빛이 파르르르, 떨고 있다. 누추한 내 방에도 그 순정한 영혼이 잠시 다녀가시는 거라고, 나는 안경을 벗고 조용히 기도를 드린다.

 

그곳에선 편히 쉬세요. 고마웠습니다.

 

*

녹차와 아주 친한 아는 분이 언젠가 물의 상처에 대해 들려주셨다. 물은 서로 부대끼며 흘러가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받는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또 상처를 받는다. 녹차를 끓일 물은 그러므로 그 상처를 달래주어야 한다. 물을 두서너 시간 전에 받아두어라. 그런 다음 물을 끓이는데, 물은 또 끓을 때 상처를 받는다. 그러므로 끓고 난 뒤 물을 미지근하게 식혀라. 모두 물의 상처를 달래주는 일이다. 그런 다음 차에 물을 부어라.

 

내 속이란 얼마나 컴컴한가. 아마도 물에게는 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상처 입는 일은 아니었을까. 흐르다가, 끓다가 입은 상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진탕에서 입는 상처……

 

- 허수경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중에서.

 

*

혼자 가는 먼 집

 

 

당신 ……,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갈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세계일보

  *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아요, 그래서 나도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무당이 작두를 타듯 춤꾼이 리듬에 몸을 맡기듯 당신, 어디 잘 여문 고통에 느슨함이 있으려구요 팽팽한 긴장, 당신을 찾으러 가는 길의 고단함, 그리움, 울분, 고요, 끊어질 듯 신경줄은 빳빳하게 모세혈관 밖으로 튀어나오려 꿈틀대고 그러나 당신,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당신, 당신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나, 숨결을 고르며 자고 있는 당신, 당신의 잠, 잠 속의 꿈, 꿈 속의 또 꿈……, 그리하여 전생에까지 닿을 수 있다면 킥킥거리며 건달 같이 불한당 같이 한량 같이 당신이나 부르며 내 생이 다아 지나갔으면, 그러나 영원히 내 것이 아닌 당신, 그러나 영원히 내 것인 당신, 겨울나무가 제 자릴 버리지 않고 겨울을 나는 것처럼 나는 당신 이름이나 부르면서 이 자릴 지키면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손가락의 으슷슷 떨림으로 당신, 꿈결과 물결과 비단결과 잠결과 꽃결과 나뭇결과 바람결과 그 모든 결에 기대어 나는 비로소 당신이라는 나무에 나이테 하나로 남아서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박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