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 유리의 존재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을 만지면서……
비로소 나는 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
유리창에서 손바닥을 떼면서…… 생각했다.
만질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검은 눈동자처럼 맑게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보는 것과 같지 않았을까.
유리는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유리에 남은 손자국은 유리의 것이 아니다.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제발 내게 돌을 던져 줘. 안 그러면 내가 돌을 던지고 말 거야.
나는 곧, 곧,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야 말 것 같다.
오늘에야 비로소 나는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의 존재를 느낀 것이다.
믿을 수 없이, 유리를 통과하여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에 네가 서 있었다.
그러나 네가 햇빛처럼 비치면 언제나 창밖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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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시인의 ‘유리의 존재’를 읽으면서 좋은 시를 만난 반가움과 함께 시 쓰는 사람으로서의 부러움을 고백한다.
하여 이렇게 좋은 시를 만나면 나는 시적한계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자괴감에 시달리곤 한다.
이 시는 ‘유리’라는 대상을 통해 타자와 접속하려는 감각적 인식을 형상화한 시적 발화기법이 탁월하다.
현실 세계에서의 벽, 즉 유리를 통해 화자의 억압된 감정을 유리에 비친 자신과 타자를 동시에 일치시킴으로서
교차되는 감정의 흐름을 하나로 호흡하려는 정서를 엿볼 수 있다.
유리라는 존재의 맑고 투명함속에 내제된 불통, 즉 개인주의적 사고로 인한 이기심과 폭력성 또는 분노와 아픔을
유리를 통해 서로 바라보는 공공선상에서 유리처럼 투명한 듯 보이나 근접하지 못하는 소통과 공감의 부재를 인식하고 그것의 깨고 싶은 화자의 고뇌가 절실하다.
햇빛은 벽을 통과해서 화자를 비추고 있는데 자신은 유리벽 밖의 꿈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는 절망감으로 환상적 미완의 의식세계는 깨지고 피를 흘린다.
종장에서 화자는 또다시 현실세계에서 유리벽 앞에 맞닥뜨린 자신을 본다.
유리를 통과한 햇빛은 따듯하여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여전히 불통의 벽 앞에서 슬프고 막막한 고독을 느낀다.
시각과 촉각의 언어적 표현으로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의미시로서 그 묘미가 짜릿하다.
2017년 8월 15일
진정한 해방을 꿈꾸는, 心田김영미
1970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9년 《현대문학》등단
시집 『 사춘기』』『이별의 능력』『타인의 의미』『에코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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