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플라워/ 장요원
해를 보면 자꾸만 어지러워
거꾸로 매달렸다
꽃대가 밀어올린 향이 오르던 그 보폭으로 흘러 내렸다
향기의 내용이 다 비워지기까지
붉어진 시간만큼 외로웠다
문득,
유리병 속을 뛰어 내리는 코르크마개의 자세가 궁금했다
핑킹가위 같은 비문들이 잘려 나갔다
창백해졌다
소소한 바람에도 현기증이 난다
무릎이 잘린 낯선 걸음들이 유리문을 지나갔다
유리에 서성이던 웃음들이 싹둑 잘렸다
통점은 훼손된 부위가 아니라
향기의 왼쪽에 있다고 생각했다
붕대처럼, 향기를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나팔꽃을 본 적이 있지
그들의 심장이 왼쪽에 있을 거라는 편견도
흘러 내렸다
내력 없이 내리는 안개비에도 쉬이 얼룩이 번진다
허공이 우산처럼 접히고 있다
홀쭉해졌다
장미의 유전자를 가진 나는
온몸에 가시가 돋아 있고
흔들릴 때마다 스스로
할퀴었다
가시와 향기는 다른 구조를 가진 같은 슬픔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몸속에서 너라는 물질이 다 휘발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바로 설 수 있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벽에 걸린 캔들홀더 속
검은 심지가
잊어버린 어제를 켜고 있다
키위 속의 잠
검푸른 담요로 달아나는 잠을 말았다
눈을 피하기 좋은 가장 알맞은 빛깔에 몸을 가두었다
밖을 가두었다
밖이 꺼졌는데도 밖은 자꾸만 환해진다
너를 밀쳐내도 너는
매듭이 없는 나를 풀고 들어온다
벽에 갇힌 초침이 고요를 똑 똑 삼킨다
견고했던 머리가 점점 연해져 간다 의지와는 상관 없다는 듯, 슬픔은 말랑거리고 질
척한 질감이어서 더욱 슬퍼진다 수면제를 먹어도 속살이 달달하고 미끈거리다 낮을
농축시킨 밤이 씨앗으로 하나 둘씩 여물어간다 불온한 계절에도 성실한 결정結晶들,
밖을 둘둘 감고 있어도
밖은 여전히 환하다
중심의 발원은 늘 몸 밖의 일이라 빗살처럼 머리가 밖으로 자라난다
수평에 눕지 못한 생각들이 비스듬히 서 있다
무반주 첼로 소나타
현들이 공중에 매여 있다
빼곡히,
수직의 자세로 허공의 천장과 바닥을 잇고 있다
그 탄력을 터뜨리는 지상의 수많은 손가락들
빗방울의 형식으로 음표들이 터진다
비의 음계는 동물성일까요
우우 우짖는 소리
맹렬하게 열어젖히는 성대들
단풍나무의 무수한 손끝에서 울음이 흘러나오고 담장 밑에서 고양이의 신음이 끊어졌다가 이어진다
옥타브를 오르내리는담쟁이넝쿨의 왼손과 오른손들,
지붕들은 범람하기 위해 솟고 있는 걸까요
팽팽하던 공중이 느슨해지자
가로등 불빛이 일제히 폐활량을 늘리기 시작한다
소리의 계단 뒤에는 내밀한 골목 하나 들어 있지
지루한 골목은
낡은 연인들이 헤어지기 쉬운 배경
길게 내린 그녀의 속눈썹도 슬픔에 매여 있었지
저녁이 낮은음자리로 몸을 낮추는 시간,
호흡이 느려진 후렴이
긴 목울대를 향해 강 쪽으로 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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