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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시간/박현솔

언어의 조각사 2013. 3. 18. 09:40

 

우주의 시간

 

박 현 솔

 

  국수를 삶으며 직선의 행적을 따라간다 직선은 뜨거운 물속으로 들어가 흐물흐물

곡선이 된다 물의 결이 뭉치지 않고 돌개바람을 만든다 이제 회오리는 뜨겁고 짜다

면발들의 탄성을 가늠할 때 혀는 정직해지고 오래된 탐욕만이 위장 속으로 흘러든다

 

  인류가 먹었던 가장 오래된 국수의 흔적을 황하강 유역에서 발견했을 때 당시 오래

살기를 꿈꾸었던 사람들은 죽고 없다 면발의 실크로드를 따라 장수의 염원만이 이어

져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생명의 길, 욕망의 길, 유혹의 길

 

  그 실크로드의 기억을 입 안에 밀어 넣으며 내 몸이 가늠하는 삶과 죽음의 교차 지점

을 건넌다 권력자들은 더 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악마와 거래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생각한다 줄에 매달려 늘어진 목각인형의 핏기 없는 팔과 다리……

굶주린 회오리바람이 그림자를 잽싸게 낚아채간다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결코 오래 살 수 없었던 사람들과 삶의 매순간을 미련 없이 버린

사람들이 별똥별로 사그라지는 시간…… 정성껏 끓인 한 그릇의 국수를 앞에 두고 몇 가

닥은 과거로 또 몇 가닥은 미래로 흘려보내는 순간, 어디선가 면발 한 올을 물고 새떼들이

북반구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