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좋은 글 훔쳐보기

사랑의 변주곡 / 김수영

언어의 조각사 2010. 4. 18. 09:23

의 변주곡 /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都市)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三)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節度)는 열렬하다. 


간단(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 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 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사·일구(四·一九)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 놓은 폭풍(暴風)의 간악한 신념(信念)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信念)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 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광신(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人類)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美大陸)에서 석유(石油)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都市)의 피로(疲勞)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 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 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瞑想)이 아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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