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존재

언어의 조각사 2010. 3. 28. 13:34

존재

                                        김영미

 

 

문이 열리자 폐 속 깊이 스며드는 아버지의 부피,

어둠 한구석의 곡괭이와 탐조등이 유품처럼 빛난다

상속이란 헛간의 시간을 보내야만 완성되는 것인가

채굴막장의 불꽃 튀던 서슬 오간데 없고

울분마저 삭이며 녹슬어간 청춘이

빛을 잊은 듯

어둔 구석에서 먼지를 덮고 있다

평생을 막장에서 살았으니

어둠이 더 익숙했을 아버지 분신은   

몸속으로부터 세월의 각질을 밀어내고 있다

거미줄에 갇힌 기억은 낡은 그리움으로

더깨입은 망각을 털어낸다

부재의 녹을 떨군 세월의 무게는

빛을 업고 날아가는 먼지처럼

저리도 가벼울 수 있는가

삐걱대는 레일에 몸을 싣고 나오며 살았음을 느꼈을,

간드레불빛 출렁이며 들던 오두막

작업복 먼지처럼 엉기던 피붙이를 희망으로 알던

그 아버지가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소리 없이 무의미한 존재로

서서히 몸에서 밀려난 각질처럼

내 자식에게서 지워져갈 존재인 내 안에서

아버지의 녹슨 곡괭이가 구멍을 낸다

혹자는

존재의 상실을 손끝에 놓고

부권의 몰락이라 했고, 자본주의 폐해라했지만

아버지는 내 존재의 마중물이다 

어둠을 뚫고 나온 소리 없는 메아리는

아직도 허공을 맴돌고 있다 

 

2010.03.28

광주문학.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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