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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보내고 사위 얻는 날

언어의 조각사 2018. 12. 4. 09:00

시집보내고 사위 얻는 날

                                     김영미



꽃 지고 열매 떨구던 마디마다 옹이가 자란다

옹이가 빛나는 어미의 전생은 무성한 나무였던가

너무 소중해 내 분신으로 알던 딸이 시집을 간다

새벽이 오면 내안에 웅크렸던 나비와 새들도

건너편 숲으로 날아갈 것이다


꽃을 열고 나가면 온통 봄날이었다

꽃과 꽃잎 딛고 온 나비가 꿈이 되던 시절

태양은 조근조근 속삭이며 무디게 저문다

한낮의 열기가 지붕과 심장을 달굴 때도

저물녘 햇살 스러지는 소리는 달콤했다


열매의 날에 들숨을 통과한 건 온통 사막이었다

마른 대궁의 이슬조차 곰팡이사생활에 편입되고

모래의 늑골을 빠져나온 삶이 경전이 되는 시기

봉숭아 꽃물 같던 노을이 손톱에서 사라져도

한밤은 가물가물 비틀대며 새벽을 부려놓는다


딸아,

시집가서도 고운 꽃이되거라

비바람 견디며 사막의 길 끝에서 서로를 만났으니 

넌 모두의 꽃 오아시스인 게다

자식에겐 꽃을 밝혀주는 곧은 줄기로

부부가 화합하여 든든한 뿌리내려 

사랑으로 하나 되는 복된 가정 이루어라


2018년 12월 1일

시끌리오 작가상을 받았다.

예전엔 각종 상을 받아도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받았었다.

딸이 3월이면 결혼을 한다.

시집을 보내는 게 아니라 사위를 얻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상을 받던 날, 딸과 예비사위가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참 행복했다.

이 글은 시상식 후 버스를 타고 오면서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