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를 향하는 내 눈을 믿지 마오
흘기는 눈이더라도 마음 아파 마오
나는 앞을 보지 못하므로 뒤를 볼 수도 없으니
당신도 전생엔 그러하였으므로
내 눈은 폭포만 보나니
믿고 의지하는 것이 소리이긴 하나
손끝으로 글자를 알기는 하나
점이어서 비참하다는 것
묶지 않은 채로 꿰맨 것이 마음이려니
잘못 얼어 밉게 녹는 것이 마음이리니
눈 감아도 보아도 보이고 눈을 감지 않아도 보이는 것은
한 번 보았기 때문
심장에 담았기 때문
눈에 서리가 내려도 시리지 않으며
송곳으로 찔러도 보이지 않는 것은
볼 걸 다 보아 눈을 어디다 묻었다는 것
지독히 전생을 사랑한 이들이
다음 생에 앞을 못 본다 믿으니
그렇게라도 영혼을 씻어야 다음 생은 괜찮아진다 믿나니
많이 오해함으로써 아름다우니
딱하다 안타깝다 마오
한 식경쯤이라도 눈을 뜨고 봐야 삶은 그저 진할 뿐
그저 나는 나대로 살 터 당신은 당신대로 잘 살기를
내 눈이 허락하는 반경 내에서 연緣은 단지 그뿐
'현장 비평가가 뽑은 2007 올해의 좋은 시' 중에서
이병률 시인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좋은 사람들」 「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문학동네, 2005)가 있으며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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