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빛깔이 달라도
붉고 탐스런 넝쿨장미가 만발한 오월,
그 틈에 수줍게 내민 작고 흰 입술을 보고서야
그 중 한 포기가 찔레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얼크러설크러졌으면
슬쩍 붉은 듯 흰 듯 잡종 장미를 내밀 법도 하건만
제가 피워야 할 빛깔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꽃잎은 진지 오래되었지만,
찔레넝쿨 가시가 아프게 살을 파고듭니다.
여럿 중에 너 홀로 빛깔이 달라도
너는 네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 반칠환 시 '장미와 찔레' 부분 -
다 같은 한 걸음
드물게 나무 아래 내려온 늘보가
땅이 꺼질세라 뒷발을 들어 앞으로 떼놓는다
나뭇잎에 앉아 있던 자벌레가 활처럼 굽은 허릴 펴
삐죽 앞으로 나앉는다
맹수에 쫓긴 토끼가 깡총 뛰어오른다
버섯조각을 입에 문 개미가 쏜살같이 내닫는다
첫돌 지난 아기가 뒤뚱거린다
보폭은 다르지만 다 한 걸음이다
- 반칠환, 시 '한 걸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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