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동시 습작노트

성적표

언어의 조각사 2006. 3. 29. 09:26
 

[동시]

성 적 표 

                     김 영 미

 

주머니 속 성적표가

가슴에서 콩당콩당 뛰고 있는데

산에 가자고 옷 갈아입으래요.

 

나무도 내 맘처럼 안절부절 못하나 봐

울그락 붉으락 바람 타는 얼굴 보며

엄마손 잡고 투덕투덕 오릅니다.

 

백담사 처마에 그네 타던 물고기가

저 혼자 손뼉 치며 노래합니다

하늘이 내려앉은 계곡물에서

산천어 열목어랑 구름 잡기 하다가

시험지 빗금수를 떠내려 보냈죠.

 

백 개도 넘는 동그라미

돌탑위에 얹어놓고 수심교 건너니

설악산 등성이에 걸터앉은 보름달이

부처님처럼 빙그레 웃고 있어요.

 

산천어 열목어 타고 하늘로 오르는데

풍경소리 뎅뎅 뗑 단잠을 깨웁니다.

 

주머니 속 성적표가 꼭꼭 숨었네

천둥 같은 발소리에 뒤돌아보니

괜찮아,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엄마 입술 닮은 성적표 도장이

보름달처럼 웃고 있어요

 

0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