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기억의 무게
언어의 조각사
2021. 10. 11. 16:54
기억의 무게 /김영미
나무가 제 무게를 내려놓는다
여름내 눅눅한 상념을 뒤적이던 잎들과
긴 오후를 지탱해주던
몇 줌의 바람을 아무런 미련없이,
뒤돌아보면 늦가을 나무들은 어머니를 닮아 있다
그렇다면 햇살을 따라나선 지상의 자식들은
태양의 영토 어디쯤에서
제 이름을 밝히고 있을까
온전하다고 믿던 내 사랑은 미수에 그치고
그리움은 고장난 시계바늘처럼 침묵한다
어쩜 이곳 어디쯤은 아니었을까
햇살을 받아내며
덜 익은 열매의 불안조차 잠재우는 숲,
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었지
바람처럼 자유로워져서도
너무 달콤한 열매를 꿈꿔서도 안 된다고
그런 날이면 내 기억의 맨 뒤켠에서
무화과 열매를 익히거나
몇 모금의 햇살을 종교처럼 받아내던 어머니
어디선가 서풍이 불어왔고
나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양파 하나 꺼내어 서둘러 썬다.
2021.10.10
시와수상문학 작가 특집 57호
-계간시마을문예 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