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등대
언어의 조각사
2016. 3. 2. 17:11
등대
김영미
폭풍우에 노출되곤 하던 시대의 바다에서
방금 튀어 오른 태양의 숨비소리 듣는다
길 잃은 문장들이
조난을 견디고 등대에 닿듯
격랑의 파고는 결코 지루하지 않다
절정은 늘 노출되기 쉬운 법
포만은 곧바로 퇴색되고
이루지 못한 예혼藝魂의 길은 아득해
지천명의 문턱을 넘었어도
채우지 못한 열망은 오래도록 떫은 빛이다
기억의 창고가 헐렁해지는 한낮
뒤엉킨 문장의 열쇠를 찾다
커피 한 잔과 마주한 사유의 충돌
그 익숙해진 이국의 향이
유통기한 없는 추억의 둑을 넘은
소꿉놀이를 풀어 놓는다
꿈이 뭔지 몰라도
육남매 웃음소리 뛰놀던 곳
툇마루와 봉당에 얹은
먼지의 사연을 빛나게 하던
그 햇살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해독되지 않던 모스부호처럼
흩어진 문장들이 빈 잔으로 모여드는
고향 뜰은 따듯하다
등대처럼,
16.03.01
언제 어디서든지 사람살이는 늘 한 곳을 향하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예기(禮記)의 단궁상편(檀弓上篇)에서 '首丘初心'이란 말을 했겠는가.
시인 心田은 김영미의 필명이다.
아마도 뼛속부터 태어난 곳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꿈이 뭔지는 몰라도
육남매 웃음소리 뛰놀던 곳
툇마루와 봉당에 얹은 먼지의 사연을 빛나게 하던
그 햇살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그것이 바로 心田의 등대인 本鄕이 아닐지.
禹秉澤 시인. 문학평론
한국창작문학.16가을호/ 광주문학.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