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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비망록

언어의 조각사 2014. 9. 4. 13:23

 

가을 비망록

                                                    김영미

 

 

볕을 모아들인 밤송이가 제 무게를 내려놓는다

비움을 채비하는 들녘을 품은 

황혼에도 풍성한 어머니 마음이다

 

정화수에 담은 기도 같은 하늘 아래

햇살을 따라나선 지상의 그림자들은

태양의 음계 어디쯤에서

제 이름을 밝힐 수 있을까

온전한 사랑은 미수에 그치고

그리움은 고장 난 시계바늘처럼 침묵한다

햇살을 조각내며

덜 익은 불안조차 잠재우는 숲은

어머니 품처럼 생을 잇는 휴식처다

하루치의 온기와 습기들이

기압전선을 들썩이는 계절

구름은 더디 왔다 금방 잊히고

열매 쪼던 새들 행방 따라

노을 바라보는 황혼의 시선은

무심한 듯 무심할 수 없는 가늠 못할 시름이다

생의 긴 그림자 속으로 이름마저 실종시킨

버릴 것 많아지는 가을

나이테가 쌓일수록

불편한 동거도 늘어난다던 굽은 등이

빈 밤송이에 박힌다

 

어머니,

당신 이름은 잊힌다 해도

어머니란 이름으로 숲은 영글고 있습니다.  

 

2014.09.01

자연, 경기문학, 착각의 시학.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