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내 시는 묵언수행 중

언어의 조각사 2013. 1. 17. 15:23

  

  내 시는 묵언수행 중

                          心田 김영미

 

 

 

얼어붙은 것은 틀에 가둔 계절만이 아니다

전진하지 못하는 사유들과

관습을 표절한 문장들이다

무리지어 빈 페이지를 달구는

새들 날개 치는 소리가

하루 치 허공을 채우며

얼어붙은 낱말을 녹인다

동장군 사잇길로

낮게 내려온 하늘이

행간을 더듬어 진을 친다

이런 날,

봉합된 밀어들이 복병처럼 터져 

나무들은 은밀히 제 키를 불리고

느닷없이 열린

아기 첫소리 같은 시어가

숲의 맥을 짚으며 움트겠지요

벽면 액자를 벗어난 봄도

몇 알갱이의 깅게랍 너머 아지랑이를

봉지 속 마른 꽃씨만큼  

정월의 치맛단 속으로 밀어 넣고 있겠지요

현기증 앓는 시들이 정립을 위해

스스로 명상의 틀에 갇히는

이렇게 눈물겨운 날에도.

 

2013.01.16

 

월간문학, 광주문학.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