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비오는 날에.7
언어의 조각사
2010. 7. 10. 23:42
비오는 날에.7
心田 김영미
길은 바람의 행방을 묻지 않는다
구름이 다녀간 것도 길의 또 다른 항변이다
정지된 풍경의 일부가 되어
제 안 침묵의 깊이를 덧칠하던 창밖은 외롭다
길들이 신열로 빛나던 날
소녀의 성장은 어느 곳에서나 멈추었고
그리다만 캔버스엔
노을 몇줌 갱년기 열꽃을 흩뿌리는 동안에도
소녀는 저녁 물감 속으로 숨어들곤 했다
잎맥조차 바랜 나무의 역사는 길 밖에서 뒹굴고
유년의 뜰로 이어지던 꿈의 잔영은
늪에 빠진 내일 낚는 그물을 짠다
눅진하던 꿈의 무게로 길은 제자리에 서있고
간간이 끊어지다 이어진 매듭의 자리가
평탄치 못했을 삶의 굴곡을 그려놓았다
길은 도전하는 자의 몫이라 했던가
나이프를 들고 세월의 묵정墨釘을 떼어낸다
새살 돋은 나무결이 환하다
소녀에게 길은 소낙비였다
장마의 모든 습기들은
긴 겨울 건기를 견디기 위한
침묵의 통로 깊은 곳에 묶어둔 일시예탁통장처럼 든든하다
그것은 갱년기 마른 목젖을 적셔줄 새암같은 것
흩어진 과거의 행간을 더듬던 구름은
때 이른 무더위에 눌린 습기들로 무겁다
건조함에 봉합된 습기들이 매듭을 풀고
일제히 터지며 난타를 벌인다
캔버스에선 숲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유년의 통로를 역류하는 꿈의 잎맥이 풋풋하다
캔버스에도 바람의 행방은 묘연하다.
2010.06.30
사진:세모시님 블로그
광주문학.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