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비오는 날에.6 -비오는 성탄절-

언어의 조각사 2009. 12. 27. 03:42

비오는 날에.6 -비오는 성탄절-

                                        김영미

 

구겨진 이브의 밤이 비에 젖는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냉동실에 갇혀

묵은 시간의 분비물을 흩뿌린

 

물두멍에 갈앉은

정화되지 못한 기억이

바람벽을 넘나드는 영사기에선

그날, 그 찻집을 두드리던 빗방울이

카페의 너른 창에 발을 치는데

심금을 파고들던 애잔한 목소리는

첼로의 선율 뒤로 흐밋하다

 

떠나야 할 이유, 변명조차 침묵해야했던

흑백으로 정지된 그대를 본다

잇새에 물린 미련은 목울대를 넘어

성탄 이브의 창을 씻어 내리고

비 맞은 산타의 주머니를 흔들어

추억 두어 점 써늘한 빈 잔에 담아본다

 

냉동된 크리스마스가 남긴 지문은

그날, 그 찻집의 날선 주파수보다 강하게

뭉그러진 감성의 뇌파를 자극한다

 

비오는 지금

영사기 초점은 흔들리고

 

09.12.25

슬프도록 공허한...

비오는 성탄절에

 

광주문학.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