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사랑초

언어의 조각사 2009. 9. 11. 22:29

 

 

사랑초 / 김영미


얼기미로 걸러낸 봄빛 머금고 푸석한 흙은 살아있었다

 

토분 속 둠벙에는

비늘 세운 사랑초가

물수제비 띄우며 빛을 희롱하고 
 

둠벙 가득 초록물결 출렁이던 날

비바람에 사랑이 추락했다

사랑초 비늘이 떨어졌다

동강난 토분과

썩은 오장육부를 쓸어버리려는 순간

흩어진 흙속

서로를 끌어안은 토실한 뿌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차마 외면할 수 없도록

 

문드러진 속창을 묻고 혜너른 보금자리 만들어 주니

영근 갈볕을 이고 꽃을 피웠다

햇살아래 하트를 만들며 둘이 되었다

달그늘에선 하나 되던 그들은

부부를 닮아있었다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 내면서

치열하게 싸우던 여름날의 폭풍 후에도

결코 갈라서지 못한


'당신과 함께 하겠어요'

'영원히 지켜 줄께요'

그들의 꽃말처럼

오늘도

부부는 토닥이면서 보이지 않는 끈을 움켜쥐고 있다.


09.09.09

 

 

 09. 광주문학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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